법원이 11일 ‘매향리 미공군 사격연습장’의 소음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주한미군의 군사훈련에 따른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안보’나 ‘국익’이라는 명분에 가려져 있던 주민의 ‘기본권’이 더 이상 무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의미도 크다는 지적이다.
3년여 동안 계속된 재판의 핵심 쟁점은 매향리 주민들의 ‘소음피해’가 폭격소음으로 인한 것인지(인과관계 문제)와 그 피해가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한계를 넘는지의 여부였다.
재판부는 “매향리 지역의 소음 수준은 공항소음 피해지역이나 공업지역만큼 높아 주민들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이라며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의 판단에는 이 지역의 하루 평균 소음도가 청력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72.2㏈에 이른다는 99년 아주대 연구팀의 역학조사와 감정결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재판부는 민법상 불법행위(피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95년 2월부터 소송이 제기된 98년 2월까지 3년간의 손해배상만 인정했다. 또 오폭(誤爆)에 대한 불안감이나 개발제한 등에 따른 피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들은 국민의 인권과 환경권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을 환영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 판결을 근거로 매향리 지역에서 발생한 지난 50년간의 인명피해와 환경피해 실태를 전면 재조사, 정부와 미군에 배상과 원상회복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잘못에 대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밖에 없도록 한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이 또다시 개정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공무수행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발생,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경우 한국 정부는 아무 잘못이 없더라도 일단 이를 배상해야 한다. 그 후 미국측에 민사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그것도 배상액의 75%밖에 돌려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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