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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극사실 회화의 세계 "붓질한 흔적 어디있나"

입력 | 2001-02-27 19:03:00


패널에 실제 모래를 접착제로 붙이고 거기에 유채로 꼼꼼하게 명암과 윤곽을 처리해 견고하게 드러나는 입체적인 벽돌더미, 소파 쿠션의 단추 부분이 극대화돼 느껴지는 팽팽한 탄력성과 촉감,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볕이 비치는 고속도로변 휴게소 앞의 어지러운 나무그림자 등….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실제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3월3일부터 4월29일까지(월요일 휴관)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실과 환영:극사실 회화의 세계’전에는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인 극사실 작가 24명의 작품 56점이 전시된다.

언뜻 보면 사진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붓터치 등으로 그림인 것을 알 수 있어 관람객들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구나 한국과 미국의 극사실 작품들이 동시에 전시돼 양국 작품들을 비교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미국에서 극사실 회화는 1960년대 중반 타성화된 추상표현주의를 거부하고 팝아트의 현실감각과 미국 회화의 사실주의적 전통을 계승하며 등장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특징은 거리풍경, 자동차, 상점 간판, 오토바이 등 풍요로운 자본주의적 생활 주변의 정경을 담는다는 점이다. 작가들은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는 대신 정경을 촬영한 사진과 슬라이드 필름을 캔버스에 비추어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정밀한 그림들을 그려내 70년대 미국 미술시장을 풍미했다.

이 중 랠프 고잉스는 트럭을, 로버트 벡틀은 자동차를, 로버트 커팅햄은 상점의 대형간판을 주로 그렸다. 가장 유명한 척 클로즈는 높이 270cm의 거대한 초상화 ‘조’ 등 인물화를 많이 제작했다.

한국에서는 극사실화가 1970년대 중반 기성 추상화단에 반기를 든 젊은 작가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시도되다 70년대말∼80년대초 절정을 이루었다. 고영훈은 돌을, 김강용은 벽돌더미를, 김종학은 장막 뒤 인간의 몸부림을, 김창영은 모래 위의 무수한 발자국들을, 지석철은 소파쿠션을, 조상현은 공사판 표지판을 주로 그렸다. 이들은 실물로 착각할 만큼의 정교한 그림으로 환영(幻影)을 창출하면서 당시 한국화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미국의 극사실화가 소비산업화된 도시 이미지들을 전달한 반면 한국의 극사실 작품은 사회현실과는 무관하게 대상에 근접해 세부를 즉물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설명회는 하루 3회(오전 11시, 오후 2시, 4시) 열린다. 어른 4000원, 초중고생 2000원. 02―771―2381∼2/www.sfoc.co.kr

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