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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인터뷰]레이니 썬, 음울한 록을 느껴라

입력 | 2001-02-23 20:11:00


3번째 언더 릴레이 주자였던 넬이 강력하게 추천한 밴드는 '레이니 썬'(Rainy Sun)이다. 이들은 지난해 서태지 전국투어 오프닝 공연에서 독특한 무대매너를 선보였다. 레이니썬의 노래는 극도의 슬픔을 담은 듯 했다. 특히 보컬 정차식의 퍼포먼스를 연상시키는 몸 동작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노래를 마친 뒤 박수가 터져나오자 "주위가 대단히 시끄럽군요"라는 멘트로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리던 23일 오후 서울 홍대 부근의 한 제과점에서 레이니썬을 만났다. 정차식(27), 김태진(25, 기타), 최태섭(26, 베이스), 김대현(23, 드럼)은 기괴한 사운드를 선보이는 밴드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수해 보였다.

93년 부산에서 결성돼 98년 동성애, 신성모독 등을 소재로 한 데뷔앨범 '포르노 바이러스'를 발표했고 지난해 1.5집 '유감'(遺憾)으로 잔잔한 화제를 일으켰던 이들에게 다양한 음악 이야기를 들었다.

▼ 레이니 썬의 그룹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

- 김태진(진): 특별한 의도가 없다. 태양이 떠있는데 비가 오는 상황이 드문 일이기도 해서 아이러니한 상황을 표현한 거다.

▼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 최태섭(섭): 최근 서울 방이동에 연습실을 마련했다. 군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되기도 했고 25일 홍대 클럽 '피드백'에서 콘서트 준비를 위해 매일 연습하고 있다. 기존의 노래 외에 'Dim'이라는 신곡도 소개할 예정이다.

▼ 레이니 썬은 흔히 헤비메탈과 사이키델릭, 그런지 록 등을 뒤섞은 밴드라고 하는데 당신들만의 사운드, 혹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정차식(식): 혹자는 우리 음악이 괴기스럽다고 해서 '호러 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귀곡성을 사용해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느린 템포의 헤비메탈에 기반을 둔 어두운 록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다. 메시지? 그냥 경험에서 느낀 슬픔, 고독, 공허함 등을 가사로 옮긴다.

▼ 왜 레이니 썬의 음악은 어두운 건가?

- 진: 과거나 지금이나 삶이 즐겁지가 않다. 유일한 돌파구인 음악을 통해 우리의 우울함을 전한다고나 할까?

▼ 93년 그룹을 결성했을 당시와 지금 달라진 것은?

- 식: 별로 없다. 옛날에는 8명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면 이제는 100명 이상의 관객이 찾아온다는 것 정도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다. 물론 공연장에서는 팬들이 있지만 공연 직후 객석에 앉아 있어도 몰라보더라.

▼ 자 이제 음악 얘기를 해보자. 1집에 수록된 음반은 한마디로 '파격 그 자체'였다. 울부짖음과 욕설이 교차하거나 헐떡이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1.5집을 들어보니 많이 얌전해졌다는 인상이 든다. 그 차이는 뭘까?

- 진: 록이라도 손이 타지 않은 장르를 해보고 싶었다. '음악 편식'은 '인종차별' 같은 행위라고 본다. 어둡고 음울하고 괴기스러운 데뷔 앨범 음악이 그랬다.

김대현(현): 느낌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데뷔 앨범은 정식 데뷔전에 만들어놓았던 노래를 담은 것이고 1.5집은 모던록, 룸바, 프리재즈 등 우리가 다루지 않았던 장르를 다양하게 다뤄보자는 의도에서 만든 비정규 앨범 형식이다.

▼ 레이니 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보컬의 특이한 창법인데...

- 식: 다양한 방법으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노래를 강조하는 부분이 나오면 흐느끼듯 처리하거나 호흡을 이어가면서 헐떡이듯 표현하기도 한다.

▼ 가사 내용을 보면 "제발 내 빰을 좀 때려줘"('나이스')라거나 "멍든 그때를 기억하나 난 네게 묻지"(상처) 같은 표현이 나온다.

- 식: 한때는 시인을 꿈꿔서 신춘문예에 응모를 하기도 했는데 물론 낙방했다.(웃음) 특별히 의미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고 풀어서 쓰다보면 유행가 가사처럼 느껴져 다른 방식으로 노랫말을 썼다.

▼ 레이니 썬의 노래는 영어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왜 외국어로 가사를 쓰나?

- 섭: 우리는 외국 록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다. 그만큼 영어가 친숙해서 외국어로 노래를 만든 것이다. 영어 노래를 만들 때는 사전을 뒤척이며 문장을 만든다. 외국 진출 같은 거창한 목표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국어로도 노래를 만들 생각이다.

▼1.5집에서 추천할만한 노래를 고른다면?

- 레이니 썬: '외설' '유감' '꿈에' '오션 2'를 추천한다.

♬ 노래듣기

  - 외설

  - 유감

  - OCEAN 2

  - 꿈에

레이니 썬은 1.5집이 "비교적 대중성을 가미한 음악"이라고 했다. 1집에 비한다면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낌이 강하다. 낭만적인 사운드가 감미로운 '외설'이나 라틴 풍의 '나이스'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보사노바 리듬과 가성을 이용한 창법이 가미된 '그래서'도 독특한 재미를 전달하는 노래. 타이틀곡 '유감'이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해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울부짖는 듯한 보컬이 어우러진다면 러시아어로 부른 '빠로비나'는 만돌린과 아코디언 연주가 이채롭다. 이밖에 독립영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에 삽입된 '오션 2'도 몽롱한 멜로디가 귀를 자극한다.

▼ 언더 생활 8년째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 섭: 97년 서울에 오기 전에는 1년에 1~2회 공연을 하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자주 무대에 선다. 하지만 아직도 어디 가서 음악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에 대한 인지도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레이니 썬의 이름이 알려졌으니 희망은 있는 셈이다.

식: 이름이 알려지면 뭐하나?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음반이 나가야 하는데 팔리지가 않는다더라. 공허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아직도 우리의 음악이 생소하게 느껴지나 보다. 여러번 들어보면 가사와 멜로디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인데.

▼ 만약 공중파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면 응하겠나?

- 레이니 썬: 마다할 이유는 없다. 언더와 오버의 구분이 없어졌으니까. 음향 장비가 문제이긴 하지만 노래할 공간이라면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찾아가겠다.

▼ 국내 가요계를 어떻게 보나?

- 진: 댄스 가수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 그들이 잘해보려고 열심히 춤 연습을 한다는 것은 인정해 줘야 한다.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면 절대 못한다.

식: 요즘 '싸이'라는 가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열정적인 춤과 라이브로 랩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이런 가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현: 기성 가요계에 관심 없다. 우리는 음악하는 사람일 뿐 누구가 어떻다고 평가할 만한 입장이 못된다.

▼ 서태지 전국 투어에 참여해 본 소감은?

- 레이니 썬: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낀 것인데 서태지는 자신의 음악을 알고 있고 자기 무대를 꾸미는 방법을 안다.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고 자기만의 요소를 가미했다고 본다. 서태지 앵콜 공연을 보면서 그가 완벽주의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6집은 음악적인 완성도가 최상이다. 서태지만큼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요즘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나?

-섭: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는 않는다.(웃음) 막내 대현이는 특례병이어서 월급을 받으며 잘 살고 있고 나머지 멤버들은 개인 레슨을 하거나 공연 수입으로 나눠 갖는다.

-식: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쓰지 않으면 된다. 특별히 큰돈이 들어가는 일도 없고 가끔 염치 불문하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기도 한다.

▼ 2집은 어떻게 꾸밀 생각이며 특별한 계획은 무엇인가?

- 진: 1집의 어두운 기조를 유지할 것이고 1.5집에서 시도했던 부분도 가미될 것도 같고…. 그러나 어떤 음악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 섭: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올림픽 체조경기장같은 곳에서 대규모 공연을 갖고 싶다. 많은 관객 앞에서 우리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 희망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끝으로 또 다른 언더 그룹을 소개해 달라.

- 레이니 썬: 우리와는 달리 밝은 록 사운드를 추구하는 '에브리 싱글데이'와 하드코어 록 밴드 '피아'를 추천한다.

황태훈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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