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통틀어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에게서 숨겨진 사생아가 발견되는 것은 드물지 않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했고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이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 자녀를 둔 사실은 두 세기가 가깝도록 비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아내가 죽은 후 재혼하지 않고 프랑스 대사 시절부터 28세 아래인 샐리 해밍스라는 흑인 노예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1998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제퍼슨 전 대통령과 흑인노예 해밍스의 후손 14명에 대한 DNA 테스트 결과 Y 염색체상의 유전자 표지군(標識群)이 동일하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곧바로 토머스 제퍼슨 기념재단은 의사 역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해 후손들의 구전(口傳)과 기록, DNA 테스트 등을 종합해 흑인노예가 낳은 자녀 6명의 아버지가 제퍼슨 전대통령일 가능성이 99%를 넘는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는 새로운 발견이 제퍼슨에 대한 이해를 풍요롭게 했다고 결론지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은 96년 아버지 장례식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의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도 최근 혼외정사와 사생아 문제가 드러나 자숙하는 중이다. 70년 한강변에서 미스터리의 죽음을 당한 권력가의 여인 정인숙씨의 아들 정성일씨는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만 빼고 높은 자리는 거의 다 해본 정일권씨가 아버지라고 주장한다. DNA 테스트를 해보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도 정일권씨는 정성일씨의 한을 풀어주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본격적인 텔레비전 시대가 개막하기 전인 60년대 임택근 아나운서는 이광재씨와 함께 국민의 스타였다. 탤런트 손지창씨는 임씨와 미스 충북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생부(生父)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성장했다. 출생의 비밀 때문에 평생을 그늘지게 살 필요도 없겠지만 적자(嫡子)라고 큰소리 칠 것도 없다. 혼외정사가 흔한 서구에서는 적자에도 가짜가 많다고 한다. 가짜 적자들이 생존 본능 때문에 출생 초기 아버지를 닮았다가 자라면서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뀐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