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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보의 옛날신문 읽기]필리핀 여배우를 카지노로 수입하다

입력 | 2001-01-30 11:26:00


강원 정선 스몰 카지노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카지노 개장 뒤로 폐광촌이었던 이곳의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대박을 꿈꾸다 쪽박을 차게 된 인간군상 중에 폐인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옵니다.

설 연휴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1월25일에는 마침내 카지노 개장 이후 최고액의 잭팟이 터져 전모씨(45)가 1억2,700만원을 거머쥐었다고 하네요. 전씨가 터뜨린 대박은 강원메가잭팟이라는 것인데 당첨확률이 불과 209만분의 1이랍니다.

한국에 카지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7년 여름이었지요. 당시의 신문기사를 읽어보니 대강의 전말을 알 수 있군요.

큰 제목은 `공인 도박장 성업중' `극동 두 번째의 카지노 인천 올림포스 호텔에' 등으로 붙어있습니다. 작은 제목들은 `한국인 금단(禁斷)이라지만 아리송한 외인 동반' `일어 쓰고 통과, 나올 땐 우리말' 식으로 다소 비판적입니다.

중앙일보 67년 9월30일자입니다.

< 새빨간 카피트에 내리비치는 휘황한 불빛 테이블을 둘러싼 외국인들의 눈이 주사위를 응시한다. 올림포스 호텔 카지노-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공인 도박장이다.

월미도를 내려다보는 인천시 항동 언덕 위 카지노는 호텔 본관에 부속건물로 세워진 1백20평 레크리에이션 센터 안에 있다. 이 카지노가 문을 열기는 지난 8월1일 몬테카르로나 라스베이거스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런 카지노는 극동에선 마카오에 이어 이곳이 두 번째라고 한다. >

기사는 이어 주인의 입을 빌려 카지노 손님은 원칙적으로 외국인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한국인은 출입금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의 눈은 예리하군요. 내국인도 외국인을 동반하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고, 일일이 조사도 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들어갈 때는 일본말을 쓰다 나갈 때는 한국말을 쓰기도 한다고 고발합니다.

이제 카지노 내부를 둘러보고 손님들의 얼굴을 살펴볼까요.

< 카지노 1층엔 블랙잭 테이블 8대, 다이스(일명 크래프스) 테이블 2대 그리고 슬로트머신, 빠찐꼬 6대가 있고 2층은 객실로 포커 테이블과 블랙잭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카지노엔 이 도박장의 인기시설인 룰레트가 없다.

주인측은 다른 게임은 당국에서 허가를 내주면서 이것만은 보류되었다고 아쉬운 듯 말했다.

게임엔 현금은 안쓰고 칩스만 쓴다. 1백원, 5백원, 2천원짜리 칩스는 돈을 주고 미리 사야 한다. 카지노에선 1인당 2만원어치 이상은 칩스를 안판다지만 그 보장을 누가 할 것인지 아리송한 일이다.

평일은 비교적 한산한 카지노는 주말이면 초만원, 주한미군인들과 한국인들이 몰려들어 낮부터 올나이트 영업을 한다. >

기자는 카지노는 외화벌이라는 순기능도 있지만 한국인 출입이라는 역기능에 대해 쓰는 것으로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 호텔측은 개장 한달 남짓밖에 안되었지만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고 싱글벙글하면서 외화획득에 힘쓰고 있단다.

외국 카지노에선 손님이 많이 땄을 때는 곧 세무서에 연락, 세금을 바치게 한다지만 이곳에선 아직 그런 체제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여하튼 당국은 외화획득이라는 안목으로 이 도박장을 공인했다지만 한국인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데엔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

잘 몰랐는데 한국 카지노의 역사는 이렇게 오래됐군요. 기사 속의 올림포스 호텔 카지노는 주인을 바꿔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온 얼마 뒤 또 다시 카지노와 관련된 한편의 기사가 등장합니다. `카드딜러로 한국에 온 필리핀 여우(女優)'라는 제목의 신아일보 기사지요.

< 미모의 필리핀 여배우 안제리나 라존(33)양이 올림포스 호텔의 카지노에서 카드 돌리는 일을 맡기 위해 19일 낮 김포공항착 내한했다.라존양은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이 도박장에서 약 1개월간 일할 것이라는데 "한국에서 내가 최초의 외국인 카드 딜러가 될 것이 기쁘다"면서 자기사진이 표지로 된 관광객 유치 잡지를 꺼내들고 뽐내기도-.필리핀에서는 영화배우로 약 1년 동안 출연하다가 3개월 전에 카드 돌리는 일을 시작했다는 라존양은 이제 한국에서까지 초빙할 엑스퍼드가 되었다고 자랑. >

하하, 요즘같으면 기사거리가 전혀 안될 소재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뉴스밸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엑스퍼트'도 아니고 `엑스퍼드'는 또 뭡니까. 하여튼 옛날 기자들의 영어 애호증은 유별나기 짝이 없어요.

카지노를 작은 사전에서 찾아보면 `도박, 음악, 쇼,댄스 등 여러 가지 오락시설을 갖춘 오락장 또는 도박장'이라고 설명되어 있지요. 그러나 두툼한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카지노는 역사도 장구하고 관련된 에피소드도 흥미롭기 짝이 없습니다.

카지노는 `작은 집’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카자(casa)가 어원인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귀족들이 소유했던 댄스, 당구, 도박 등의 사교-오락용 별관을 뜻했다고 합니다.

18~19세기에는 유럽 각국이 왕국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앞다퉈 개설하기 시작했다지요. 특히 카지노는 오스트리아에서 활발했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들불처럼 일어나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잇따라 금지됐다고 하네요. 쿠바가 혁명후 성업중이던 아바나의 카지노를 금지했던 사례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사실 요즘 한국의 카지노 열풍은 아시아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최근호(1월 25일자)는 아시아 국가에서 불고 있는 도박사업에 대해 진단하고 있습니다.

마카오와 필리핀은 카지노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답니다. 인도는 한국과 더불어 사상 처음으로 내국인 출입이 허용된 카지노를 개설됐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와 버마는 카지노가 국경을 따라 번성하고 있다지요. 오랫동안 카지노를 금지해왔던 일본과 태국, 대만도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지난해 80억 달러 규모였던 아시아 지역 카지노 수입이 2010년까지 230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군요.

한국 카지노에 대해서는 `지난해 10월 강원도에 처음으로 내국인들을 위한 카지노를 허가한 뒤,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매일 3,600명정도의 이용자가 한 사람당 평균 260달러를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워커힐을 포함, 이미 영업중인 다른 13개의 도박장마저 내국인에게 개방하라는 압력에 직면하게 됐다'고 쓰고 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마지막이자 최대의 카지노 붐을 맞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유럽과 호주 등지의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지요.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대목도 있습니다.

호주의 도박 연구협회 책임자인 잰 맥밀렌이라는 사람은 "가난이 만연하고 후생제도가 취약할 경우 카지노의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며, 특히 인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군요.

한국의 카지노는 이런 우려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요.

늘보 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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