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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대안학교 '하자센터'관장 조한혜정교수

입력 | 2001-01-11 18:31:00


시무식장엔 재즈선율이 흐른다. ‘선생님’이 아니라 ‘판돌이’라 불리는 리더가 무대에 올라 “올해는 10대들과 즐거운 고민을 많이 하려고 한다”고 신년 계획을 얘기한다. 행사 맨마지막에야 초록색으로 머리 한가닥을 염색한 장(長)이 나와 “판돌이들이 휴가를 제대로 가고 싶으면 ‘죽돌이’(이곳에서 죽치고 있는 10대)를 잘 키워라”고 말한다. ‘하자센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서울특별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의 10일 시무식 풍경이다.

지난해말 창설 1주년을 맞은 하자센터의 조한혜정(趙韓惠貞·52·연세대 사회학교수)관장은 이곳에서 ‘조한언니’라 불린다. 그는 “10대는 어른들에 비해 권력도, 자원도, 투표권도 지니지 못한 소외된 계층이면서도 대안적 사회질서를 만들어가는 잠재력을 지닌 이들”이라며 “청소년 대안학교이자 문화공간인 하자센터에서 10대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른들이 10대의 권리와 능력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신화속에 빠져있어 아이들이 정해진 궤도에서 조금만 이탈해도 공포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가 보는 오늘의 교육은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다. 개발독재시대, 이미 정해진 상품을 대량생산으로 쏟아내던 사회에선 시키는대로 뭐든지 어느만큼은 해내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키우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바뀐 정보화시대. 컴퓨터가 갖지 못한 직관 감수성 오감과 육감 욕망을 통해 시장의 변화를 재빨리 간파하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필요하지만 학교에서는 아직도 온순한 생산자만을 기르려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교육에서만은 이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대는 이같은 변화를 이미 알고 있다고 조한교수는 말한다.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았던 기성세대와 달리 그들은 대학졸업증을 따도 모든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해도 안되는 게 있는 불확실한 시대가 왔다는 것을 놀라운 감수성을 통해 이미 체득하고 있다.

그들이 현재의 컨베이어벨트 교육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이를 교실붕괴로 받아들이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며 억누르려 한다. ‘우리 안의 분단’. 탈분단문제를 천착해온 조한교수는 이같은 소통의 부재가 국토의 분단뿐만 아니라 세대의 분단, 마음의 분단까지 낳았다고 말한다.

“지금이 대량생산체제식 통제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문명사적 전환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와 아이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배운다는 자세로 ‘함께’ 가면 다같이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러나 10대를 통제하려 들면 끝없는 전쟁뿐입니다. 아무도 이기지는 못하는 전쟁이죠.”

80년대 세상을 변화시킨 386세대가 이제 교육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는 조한교수는 ‘물갈이’가 아니라 ‘판갈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학교와 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얘기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믿음이 한 예. 스무살 이전에 대학에 가고, 20대 중후반에 대학졸업해 취직을 하고… 등등은 산업사회에서의 ‘때’다. 이제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때가 바로 공부할 ‘때’가 돼야 하며 학교는 자신이 하고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자센터는 현재의 학교가 이같은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시도된 실험이다.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모토아래 음악과 영상 패션 미술 등을 놀이하듯 배우고 생산한다. 인터넷라디오방송국, 생활디자인센터 등 벤처를 차린 ‘죽돌이’도 있다.

꼭 뭔가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아직 하고싶은 것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난간이나 ‘쉬자방’에서 그냥 쉰다. 그러다 몸이 근질거리면 스스로 알아서 뭔가를 한다. 평가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하는 과정과 결과물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하자센터에서 10대의 잠재력과 대안학교의 가능성을 찾은 조한교수는 4년전 썼던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를 진화시킨 저서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를 최근 펴냈다. 나비가 팔랑거려 태풍을 일으키듯이, 격변기의 작은 실험인 하자센터가 기존의 제도교육에 자극을 주리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다. 이미 아시아에서 하자센터는 대안교육에 관심있는 이들의 벤치마킹 장소가 돼버렸다.

행복은 하고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조화시키는데 있다고 여기는 조한교수는 지금 행복하다. “불행하다 싶으면 왜 불행한지를 알고 싶어 했고, 원인을 찾으면 그것을 풀어내는 ‘판’을 벌여야 하는 체질인데 그걸 잘하거든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인문사회과학자로서의 그가 매달려온 화두였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여자’여서 불행했던 80년대, 그는 ‘또하나의 문화’라는 대안문화적인 여성운동을 펼쳐왔다. 90년대 중반 들어 일류대 입학 관문을 통과한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3분이상을 집중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것을 보며 불행했고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청년과 청소년으로 옮아갔다. 그 결과 10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만들어낸 셈이다.

관(서울시)―학(연세대)―민 합동 벤처조직인 하자센터의 최고경영자(CEO) 역할은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고 있다.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 갖게 된 사회변화와 구성원의 욕망을 읽어내는 능력, 의사소통의 합리성, 타협과 협상의 기술 등이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자식을 어떻게 키웠을까. 어려서부터 몸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어했던 딸은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인도무용 공부를 위해 인도에 가 있다. "글쓰기 같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없는 학교는 다닐 필요가 없다”며 고교를 자퇴했던 아들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환경경제학을 공부하며 즐겁게 문화기획,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만난사람=김순덕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