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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폭발사고]주택가 위험시설 방치 禍 불렀다

입력 | 2000-12-10 20:00:00


《9일 새벽 경기 부천시 주택가 한복판에서 발생한 엔진오일 야적장 폭발사고는 행정적 미비와 관할 행정관청 및소방당국의 소극적 대응이 빚어낸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인화성이 강한 폭발물이 주택 밀집 지역에 버젓이들어서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행정관청과 소방당국은‘법적 규제가 없고 인력도 부족하다’며 팔짱만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느슨한 소방법과 업주들의 ‘나는 괜찮겠지’하는 안전불감증이 주택가의 대형인명피해를 예고하고 있다.》

▽부천폭발사고〓“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이 흔들려 무조건 집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집에서 잠을 자다 인근 엔진오일 야적장에서 폭발사고가 나면서 봉변을 당한 이은진씨(40·월드빌라)는 전쟁이 난 줄 알았을 정도로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9일 오전 2시10분경 경기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엔진오일 취급업소 대한인더스트리얼㈜에서 대형 폭발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이 업소 야적장에 있던 엔진오일 20ℓ짜리 800여통과 16ℓ짜리 1200여통 등 3만5200ℓ의 윤활유가 연쇄폭발하면서 인근 빌라와 주택가로 불이 번져 주민 20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또 인근 골목길에 세워져 있던 차량 10대가 불에 타고 주택가 유리창 수십여개가 파손됐다. 80평 규모의 조그만 야적창고에서 난 불이 반경 1km 이내 주민들을 ‘전시상황’으로 몰아넣었지만 소방서와 경찰조사결과 이곳은 위험물 취급 허가도 받지 않은 무허가 업소인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예방 시설은 분말소화기가 전부였다. 이날 화재로 엔진오일과 함께 야적돼 있던 부동액 1만6000ℓ, 오일필터 3000개와 가건물 25평 등이 전소돼 4900여만원(소방서 추산)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났다.

▽문제점과 대책〓소방법상 제4석유류에 속하는 윤활유는 상대적으로 휘발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6000ℓ 이상 취급할 경우에만 위험물 설치허가를 받도록 돼있다. 휘발유는 100ℓ 이상 취급시 위험물 설치허가를 받는다.

이같은 느슨한 규정에 따라 대부분의 업소들이 방호벽 설치 및 주택가와의 이격거리 등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없이 무허가영업을 해 안전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업소도 이런 법적 맹점을 이용해 허가기준의 6배나 되는 양의 엔진오일을 취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방전문가들은 “엔진오일이 휘발성은 약하지만 담뱃불이나 종이에 불이 붙어 옮아갈 경우 쉽게 발화할 수 있는 데다 폭발성도 매우 강한 위험한 물질”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주택가일 경우 허가 기준 용량을 낮추고 방호벽 설치 등의 안전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에는 이같은 무허가 위험물 취급업소가 적지 않다. 부천지역만 해도 10여개의 업소들이 무허가 영업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방당국과 부천시 측은 실태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소방관계자는 “허가를 받지 않은 곳은 소방대상물도 아니며 인력도 부족하다보니 무허가 업소를 적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