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늘보의 옛날신문읽기]자유부인에서 젖소부인까지

입력 | 2000-11-24 16:21:00

자유부인


일전에 무슨 일로 영화감독 한분을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과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 들은 얘긴데, 그분 말씀인즉 “나는 어떤 영화를 만들든 제목을 미리 정해놓고 시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목을 미리 근사하게 정해놓고 시작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뭐든 술술 풀린대요. 근데 제목이 자꾸 된고구마 목에 걸린듯 신경쓰이기 시작하면 결과도 신통찮더랍니다.

아닌게 아니라 충무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영화제목을 정하는데 적게는 수십개, 많게는 수백개의 후보들을 올려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지요.

눈치채셨겠지만 오늘은 영화제목 얘깁니다. 1987년 5월19일자 경향신문 기사죠. 제목은 ‘영화제목에 비친 「여성상」변화'로군요.

기사는 이어 영화들을 제목별로 분류하고 있군요.

「....여자」 영화 : 「내가 버린 여자」(77) 「색깔있는 여자」(80)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79) 「집을 나온 여자」(71) 등 36편.
「....여인」 : 「아름다운 여인」(59)「가을에 온 여인」 (69) 「밥을 먹고 사는 여인」(85) 등 28편.
「....부인」 : 「백사부인」(60) 「안개부인」(71) 「쥐띠 부인」(71) 「복부인」(80) 등. 「자유부인」서 「애마부인」까지 23편.

어떴습니까. 재능만 있다면 영화제목 한 가지만 갖고도 읽을만한 풍속사책 한권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복부인」은 부동산투기 여사에 관한,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는 저녁에 출근하는 여자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잖아요.

그런데 경향신문의 기자는 70년대 들어 선정적인 영화가 전시대보다 더많이 만들어지고, 내용 또한 훨씬 노골적으로 변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한국영화사에서 70년대는 `불행의 연대'로 기록되고 있지요.

유신정권은 갖가지 검열의 자를 들이댔고 그로 인해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대로 위축됐습니다.

그 결과 함량미달의 영화가 양산됐지요. 영화산업은 60년대보다 오히려 퇴보했죠.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하니까 영화인들은 돌파구로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영화들 가운데 ‘영자의 전성시대' ‘별들의 고향'은 그나마 수작이었고요.

이런 배경에서 기자는 한국영화가 고 다고 ‘회고'하고 있는거지요.

늘보 letitbi@hanmail.net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