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동화’는 갔어도 원빈(23)은 별이 되어 남았다. ‘가을 동화’는 겨울로 이어지고 있다.
촬영 현장인 강원도 보광피닉스파크 그의 방은 ‘가을동화 원빈 방’으로 보존돼 관광상품이 됐다. 최근 그에게 쏟아진 영화 출연 제의만도 15편. 다음달 중순 남자 탤런트로는 처음으로 화보집도 낸다.
화보 촬영을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나기 전날, 서울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연한 카키색 파카에 회색 티셔츠, 베이지색 면바지 차림인 그는 강원 정선에서 올라오는 길이라 했다. 정선?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카지노가 들어선 곳?
“고향이에요. 카지노장에는 못가봤어요. 아버지가 광부셨는데 요즘은 소일거리 삼아 농사 짓고 계세요.”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아우라지가 그의 고향. 본명은 김도진. 아버지가 광부였다는 말에 그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주먹보다 조금 클까말까한 갸름한 얼굴, 쌍꺼풀이 진 눈, 우뚝한 코…. ‘가을동화’에서 그가 맡았던 호텔 재벌의 막내아들 ‘태석’역이 어울리는, 강남 8학군 출신 같은 얼굴이었다.
“잘 생겼으면서도 흔하지 않은 얼굴이죠. 신비감도 있고 무엇보다 ‘생활적’으로 느껴지지 않잖아요.” (‘가을동화’의 윤석호PD)
‘생활’의 냄새가 묻어나지 않는 얼굴이라지만 실제로는 ‘생활’을 위해 고생도 많이 했다. 춘천에서 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카센터에서 일하다가 탤런트가 되기 위해 상경했다. 95년 데뷔전까지 경기 광명시 누나집에 기식하면서 신문배달부터 막노동까지 해 봤다.
“‘태석’역은 마치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어요. 바로 전 작품인 ‘꼭지’에서 맡았던 가난한 막내아들 ‘명태’가 훨씬 연기하기 편했어요.”
‘가을동화’를 하면서 몸무게가 3㎏ 넘게 빠졌다. 키 177㎝, 몸무게 64㎏이다. 그의 코디네이터는 “빈이가 원래 운동을 해서 몸이 좋았는데 화보 촬영전에 살이 빠져서 안타깝다”고 했다.
원빈은 요령을 피울 줄 모른다. 쉽게 넘어가도 되는 연기도 ‘목숨걸고’ 하는 스타일이라 함께 일해 본 PD들은 “영악하지 못하고 어찌보면 단순하고 순진하다”고 평한다.
그런 성실함 때문일까. 안약을 쓰지 않은 그의 눈물연기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끝까지 도와주는 태석의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연기에 실려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직도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일주일에 두 번씩 연극배우 신용욱씨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고 있다.
인터뷰를 한창 하고 있는데 누군가 “흰색 소나타Ⅱ 누구 차에요, 빨리 빼주세요”하자 그는 “제 껀데요”하며 주섬주섬 열쇠를 꺼냈다. 요즘 젊은 연예인들은 조금만 ‘떴다’ 싶으면 차부터 새로 뽑고 본다던데….
출연 등급상 현재 그의 출연료는 편당 30만원선이지만 제작진은 ‘기여도’를 참작해 특별히 편당 80만원으로 올려줬다. 앞으로는 편당 200만원으로 껑충 뛸 전망이다. 내년에는 영화에 전념할 예정이다.
‘인터뷰하기 힘들다’던 소문대로 그는 말수도 적고 자기 자랑은 물론 농담이나 ‘입에 발린 말’도 못했다. 토크쇼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니저는 “그래도 오늘은 말을 많이 한 편”이라고 했다.
하긴, 그러고보니 다른 연예인들 같으면 “비오는 데 오느라 고생 많았다” 는 등 인사치레로라도 했음직한 말들을 그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 그가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전화 화면에 뭐라고 써놓았는지 궁금해 빼앗아 열어보았다. 꺼져 있었다.
“꺼놓고 있을 거면 휴대폰을 왜 갖고 다녀요?”
“인터뷰 중이었잖아요.”
●…원빈의 말·말·말
▽그 때는 정말 내 처지가 개 보다도 못했죠 (데뷔당시 미니시리즈 ‘프로포즈’에서 자신이 끌고 다녔던 1억5000만원짜리 개가 전속 미용사와 매니저까지 두고 자동차 뒷자석에 혼자 타고 다니는 걸 보고 떠올린 생각).
▽태권도는 싸움하라고 하는게 아니에요 (태권도 공인 3단이라는 그에게 ‘싸움 잘하겠다’고 하자 갑자기 정색을 하고).
▽요즘 연기하는 것처럼 공부했으면 전교 일등을 한번쯤 하지 않았을까요(데뷔전 TV에서 볼 때는 쉬울 줄 알았던 연기가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더라며).
▽..비 오는 날이 좋아...(원빈이 자신의 핸드폰 화면에 적어 놓은 말).
▽중3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를 좋았했지만 한마디도 못해 봤어요(첫사랑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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