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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이광춘/동포를 조선족이라 불러서야

입력 | 2000-09-19 18:52:00


내가 1988년 서울에서 처음 작품전시회를 했을 때만 해도 서울의 언론은 거의 다 나를 ‘중국에서 온 우리동포’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오니까 이번에는 조선족 이라고 불렀다. 되도록이면 현지에서 부르는 대로 따르는 것이 요즘 언론의 추세인 듯하다. 예를 들면 동경(東京)을 도쿄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동포에 대해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 든다.

중국 정부는 우리를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니까 각 민족을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이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조선족 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중국에 사는 동포가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100% 중국 국적을 갖고 있다. 한국 근대사에 기록돼 있듯이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땅을 개척하기 위해서 또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박해를 피해서 중국에 갔다. 남북이 분단되고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들은 국적 선택의 여지가 없이 자동적으로 중국 거주민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 살고 있든지 한민족은 우리동포 혹은 재○동포 라고 부르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주권국가이므로 자기 민족의 칭호를 외국 정부가 부르는 대로 따르는 것은 합당치 않다. 나는 ‘조선족’이란 호칭을 들을 때마다 한민족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곤 한다.

중국 정부는 세계 각지의 화교에 대해 자국 중심적으로 미국국적동포 일본거주동포 홍콩 마카오동포 라고 부른다. 중국 정부는 해외 화교들이 이방인이 아니라는 입장을 일관성있게 확인해주기 때문에 화교들은 세계 어느 곳에 흩어져 있든지, 또 중국 국적이 아니어도 민족의식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겨레도 인구가 7000만명이 넘는 결코 작은 민족이 아니다. 해외 거주 동포에 대한 호칭부터 우리 한민족의 민족적 동질성을 실감할 수 있는 말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이광춘(경기대교수·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