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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지사장'상 4연속 수상 한국EMC 정형문사장

입력 | 2000-02-08 20:19:00


지난달 6일 미국 뉴올리언즈 EMC 본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연출됐다.

한국EMC 정형문(丁炯文·44)사장이 ‘최고 지사장’ 상을 받고 단상을 내려오는 순간 정사장의 직속 상관인 미국인이 단상을 내려가는 정사장의 등을 향해 한국식으로 큰 절을 한 것. 4300여명의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뜨리면서 환호했다.

▼"협동심-가족주의 강조"▼

정사장이 이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은 탁월할 경영능력으로 한국EMC를 단기간에 급성장시켰기 때문. 그는 매년 전세계 지사장 가운데 3명에게만 주는 ‘최고 지사장’상을 EMC 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수상, 이날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EMC는 컴퓨터 데이터 저장장치 및 솔루션을 개발해 판매하는 회사.

정사장이 거둔 성과는 특히 ‘코리언 스탠더드’가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눌렀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한국EMC는 EMC의 아시아 지사 가운데 본사의 간섭이 전혀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지사가 하겠다고 하는대로 본사가 믿고 맡기기 때문. 정사장은 “본사의 규정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무조건 한국적 정서에 맞춘다는 원칙으로 경영을 해왔다”고 말한다.

▼마진줄여 협력업체 도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한창이던 98년의 일화 한 가지. EMC본사는 한국 지사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협력업체를 통하지 않고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채택하라고 정사장에게 지시했다. 정사장은 그러나 본사에서 온 임원에게 “그동안 우리를 도와준 업체들을 이렇게 버리면 안된다. 차라리 우리 마진을 줄이더라도 협력업체들을 도와줘야 한다”며 한국 특유의 ‘의리’를 강조했다.

한복까지 입고 본사 임원과 마주앉아 ‘한국적 정서’를 강조하는 정사장의 주장은 어렵게 받아들여졌다. ‘은혜’를 입은 협력업체들은 더욱 열심히 뛰어다녔고 그 결과 정사장은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20%가량 매출을 늘려 본사의 배려에 화답했다.

▼애사심 최고-퇴사자 없어▼

또다른 일화 하나. 영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본사 회의에서 정사장은 한국어 통역을 요구했다. 한 사람을 위해 통역을 두긴 어렵다는 본사의 반응에 정사장은 “행여나 말을 잘못 알아들어 비즈니스를 망치는 것보다는 비용이 좀 들더라도 통역을 통해 확실하게 의사를 교환하는게 좋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정사장의 끈질긴 요구가 받아들여졌고 지난해부터는 한국인 통역이 본사 회의에 등장했다.

협동심과 가족주의를 강조하는 정사장식의 ‘한국식 경영’은 최근 들어 다른 지사의 벤치마킹 대상 1호가 됐다. 전세계 지사에서 실시하는 ‘직장 만족도 조사’에서 항상 한국EMC의 만족도가 가장 높게 나오기 때문. 정사장을 1호로 현재 108호 사원까지 단 한 명의 퇴사자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사장은 “주위 사람들은 한국EMC를 한국 기업보다 더 토종기업이라고 평가한다”며 “본사의 문화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다른 다국적기업 지사들도 조금은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