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킨 세계적인 갑부들. 벤처기업가의 극적인 성공담이 아니라 10여년 만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러시아 신흥 재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자본주의화로 빚어진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잽싸게 시장경제에 적응해 정경유착과 탈세 등 범법행위까지 동원해 기업을 키웠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98년 세계 10대 부자로 블라디미르 포타닌 오넥심그룹 회장을 꼽았다. 지난해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 신흥재벌의 자산가치는 외형상 크게 폭락했지만 지하경제규모가 국민총생산의 40%에 이르는 러시아인지라 이들은 여전히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있다.
신흥재벌들은 대개 88년 기업활동이 허용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 서방은행을 통한 거액의 외화유출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지목되는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로고바스그룹 회장 역시 이 시기에 자동차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체첸 마피아와 손을 잡고 전국의 자동차 유통망을 장악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 민영화를 통해 최대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와 정유회사 시브네프티를 손에 넣었다.
포타닌은 은행을 세워 마피아들의 ‘검은 돈’을 세탁해주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해 세계 최대의 니켈 생산업체인 노릴스크 니켈사와 정유회사 시단코를 인수해 20대에 재벌 총수에 올랐다. 포브스가 추정하는 그의 개인자산은 16억달러.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모스트그룹 회장은 금융으로 번 돈을 언론에 투자해 복합 미디어그룹을 만들어 러시아의 루퍼트 머독으로 군림하고 있다.
최대 민영 방송인 NTV와 위성방송 NTV+, 일간지 시보드냐 등이 모두 그의 소유.
이들 러시아 재벌은 대개 금융으로 시작해 에너지 자원 분야의 거대 산업체를 인수해 몸집을 불리고 언론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사업패턴을 보이고 있다. 베레조프스키 구신스키 등 유난히 유태인이 많은 것도 이채롭다.
정경 유착은 고속성장의 가장 큰 열쇠. 민영화되는 국영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재벌들 사이에 사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 때만 되면 똘똘 뭉쳐 우파를 지원한다. 직접 정치에 뛰어들기도 한다. 베레조프스키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이며 포타닌은 경제부총리를 지내기도 했다. 구신스키는 대권 후보인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시장의 후원자.
이들은 거부가 되자마자 조강지처를 팽개치고 젊은 부인을 얻었다. 돈을 헤프게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블라디미르 브린찰로프 페리인 그룹회장의 취미는 베르사유궁전을 본뜬 별장을 전국 곳곳에 짓는 것과 벤츠 자동차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는 90년 국영 의약품 제조업체 연합인 ‘페리인’사의 주식 12%를 매입한 후 차츰 경영권을 키워 93년 회장까지 올랐다. 그는 디자인개선과 상품다양화 경영합리화를 통해 95년 페리인사를 흑자기업으로 바꿨으며 현재 러시아 의약품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김기현기자〉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