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간 멈췄던 손목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본인 야쿠자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해온 재일교포 김희로(金嬉老·71)씨가 68년2월20일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스마타쿄(寸又峽)온천마을의 후지미야 여관2층에서 인질극을 벌일 당시 차고 있었던 세이코 자동태엽 시계.
숨막히는 순간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인 김씨는 검거되기 직전 여관 안주인 모치즈키 히데코(望月英子·61·당시 29세)에게 시계를 풀어 건네주었다. “피해를 줘 미안하다. 여관비 대신 받아달라”는 말과 함께.
히데코는 거액을 제시한 일본인 시계수집광의 유혹을 뿌리치고 시계를 소중히 보관해오다 올초 박삼중(朴三中)스님에게 “주인이 석방되면 돌려주길 바란다”며 시계를 전달했다. 삼중스님은 김씨의 석방소식을 들은 25일 시계방에 들러 먼지를 털어낸 뒤 시계를 흔들어보았다. 그러자 시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31년간 정지됐던 주인의 인생처럼.
한편 부산 영도구청은 27일 김씨의 본적이 영도구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호적에는 김씨의 성이 권(權)씨로, 이름도‘嬉老’가 아닌 ‘禧老’로 돼 있다. 아버지는 권명술(權命述)씨, 어머니는 박득숙(朴得淑)씨. 본적은 부산 영도구 봉래동 5가 66.
김씨의 성이 바뀐 것은 생부인 권씨가 일찍 숨진 뒤 어머니 박씨가 김종석(金鍾錫)씨와 재혼을 해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랐기 때문. 김씨는 후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이름을 ‘權禧老’로 쓸 정도로 친부의 성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조용휘기자〉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