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약탈해갔던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의 94년만의 국내 반환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한 민간단체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이뤄진 점이 주목된다. 또 약탈된 문화재의 공식반환은 전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례이고 북관대첩비를 제자리인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노력은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반환을 이끌어낸 한일문화재교류위원회는 97년 설립 이래 북관대첩비 반환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이승호(李承虎)위원장은 북관대첩비추진위원회를 결성해 한국과 일본 미국 등지의 지인(知人)과 다양한 채널을 이용해 반환협상을 벌여왔다.
민간의 주도로 이뤄진 이번 반환은 해외 약탈문화재의 환수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약탈문화재 반환 협상에 좋은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탈해간 문화재가 국내에 반환된 사례는 드물다. 일제 약탈 문화재 반환의 경우 일본 무역상인이 1915년 통째로 뜯어 약탈해간 경복궁의 자선당 건물이 95년 돌아왔고 96년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선생이 친필로 기록한 서법(書法)서적 등 134종의 서책류가 반환됐을 정도.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협상은 양국 정상의 원칙적인 반환합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자리걸음 단계다.
학계는 북관대첩비를 원래 위치했던 북한으로 돌려보내려는 사실에 각별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일제 약탈 문화재를 조사 연구해온 김정동(金晶東)목원대교수는 “문화재는 원래 위치에 있어야 한다”며 “이전부터 북관대첩비를 조사하면서 반환되더라도 북한으로 반환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해왔다”며 북한 인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북관대첩비◇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정문부(鄭文孚·1565∼1624)가 이끌었던 함경도지역 의병들의 왜군 격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 숙종 때 함경도 북평사로 부임한 최창대(崔昌大)가 함북 길주군 임명 지역에 세웠던 전공비. 높이 187㎝, 폭 66㎝, 두께 13㎝. 1500여자의 글자가 새겨졌고 함경도 의병이 왜군을 무찌른 사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함북 길주지역의 전투는 정문부의 빼어난 전투 지휘 등에 힘입어 임진왜란 전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승(大勝)으로 평가받고 있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함경도 지방에 진출한 일본군이 주민들을 협박해 이 비석을 파내어 일본으로 강탈해갔다. 북관대첩비가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78년 재일사학자 최서면(崔書勉)국제한국연구원장에 의해 확인됐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