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중엽 흑사병(페스트)이 유럽을 휩쓸면서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천5백만명이 희생됐다. 중앙아시아가 병원지로 추정되는 이 병은 1347년 이탈리아 제노바의 상선을 타고 유럽에 상륙하자마자 상업로를 따라 전 유럽으로 퍼져 1351년까지 맹위를 떨쳤다.
흑사병이 전 유럽에 걸쳐 창궐한 원인으로 11∼13세기 십자군 운동을 드는 견해가 있다. 십자군 원정로를 따라 교역이 활발해지는 등 도로교통망이 발달돼 전염병 전파도 쉬워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의 발달은 사회의 네트워크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도로 교통망이 아니라 정보통신망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통망의 발달이 상품과 사람의 교류 뿐만 아니라 전염병의 확산을 가져온 것처럼, 정보 통신망의 발달도 예기치 않은 문제들을 일으키곤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음란물 등 불건전한 정보의 급속한 유통이다. 특히 인터넷을 타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막을 수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막는다 하더라도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하며 세대간에도 차이가 있는 윤리적 기준을 어디에 맞추어야 하느냐가 문제이다.
정보통신망 자체를 병들게 해 사회를 혼란시키는 질병도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Y2K문제가 그것이다. 최근 CIH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전국의 많은 PC가 피해를 보았다. 대만의 한 대학생이 컴퓨터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바이러스는 전염성과 독성이 매우 강해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컴퓨터가 2000년대를 인식하지 못해 일어나는 Y2K문제는 바이러스에 비할 수 없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컴퓨터가 연도인식에 오류를 일으켜 잘못 작동되거나 작동을 중지하면 컴퓨터에 의해 돌아가는 금융 교통 통신 에너지 행정 등 사회 시스템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인류는 산업화 과정에서 자원고갈이나 인간소외, 환경파괴 등 많은 부작용을 경험했다. 정보화과정에서는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최소화함으로써 나중에 비싼 대가를 치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거의 매일 발생하므로 사용자가 평소에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 등 스스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에서도 4월초 이미 멜리사 바이러스로 혼이 난 사용자들이 예방을 단단히 해 CIH바이러스 피해가 적었다.
정부는 음란물 등 불건전 정보를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보급하고 정보 통신윤리위원회를 통해 심의를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정보 이용자가 스스로 좋은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Y2K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고 그동안 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착실히 해결하고 있지만 가정에서 사용하는 PC는 사용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직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지 않아 정부는 범국민적인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
남궁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