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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소극장 살길 찾아 또한번 「긴 밤 지새우기」

입력 | 1999-03-19 18:37:00


암울했던 시절 ‘긴 밤 지새우고…’(아침이슬)로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김민기(48). 그가 요즘 뜬눈으로 긴 밤을 지새우고 있다.

―뭘 고민하는가.

“지금 대학로(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40여개 소극장은 대부분 개점휴업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만 원망하다가는 ‘혼수상태’에 빠지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소극장이 보여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정공법’만이 소극장들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민기는 91년부터 학전그린과 블루란 이름의 소극장 두곳과 극단 학전의 대표를 같이 맡고 있다.

―‘정공법’이 뭔가.

“문화적 향수와 향유능력을 가진 중년층을 대학로로 끌어들이는 것이 ‘정공법’이다. 우리 책임이지만 이제껏 젊은층만 노리다가 소극장들이 이 꼴이 됐다. 폭주족과 마로니에 공원으로 대학로의 연령을 예단하지 말자.”

그는 3월26일부터 4월5일까지 학전 그린소극장에서 여는 ‘학전 봄풍경 32645’를 ‘정공법’을 구사하는 공연으로 기획했다. 안숙선(국악) 이애주(춤) 강태환(프리색소폰) 김대환(타악기) 등 좀처럼 대학로에서 만날 수 없는 명인들이 공연을 하며 그들의 삶과 음악에 관한 철학을 들려주는 무대다. 대규모 공연장에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인간적 체취, 소극장만이 지닐 수 있는 미덕을 듬뿍 살리겠다는 시도이다.

―소극장은 우리 문화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소극장은 어머니 자궁같은 존재요, 농사로 치면 못자리농사다. 이 말에는 소극장이 문화인을 ‘키워낸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배우들의 살냄새, 굵은 땀방울을 바로 무대 앞에서 보고 느끼면서 문화에 대한 열정을 키울 수 있는 곳이 소극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소극장이 이 지경까지 왔다고 생각하나.

“일차적으로 우리의 창의력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고, 소극장이 키워낸 결실을 죄다 TV 등 거대미디어가 챙겨가버리면 정말 어쩔 수 없다. 언론이 대형 뮤지컬이나 유명 번역극 등 ‘레디메이드’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한 이유다.”

―정부의 문화정책은 어떤가.

“문화정책 부재의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가 대학로 소극장이다. 티켓가격 중 7∼8%가 문예진흥기금으로 나가는데 이건 ‘수재민에게 수재의연금 걷어가는 꼴’이다. 정책입안할 때 현장의 목소리가 수용되지않는 한 이런 터무니없는 정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페스티벌이 ‘문화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을는지.

“실천없이 세력부터 규합하면 결국 이익집단으로 변해버린다. 공멸의 길이다. 대학로의 현실에 관심이 있다면 일단 현장으로 나와라!”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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