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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방만경영]농민예금 부실대기업에 헌납한 꼴

입력 | 1999-03-01 18:30:00


‘공룡 조직’ 농협에 본격적인 개혁의 메스가 가해졌다. 그동안 개혁의 무풍지대에 있었던 농협의 이번 개혁작업은 조직의 혁신은 물론 농협수뇌부에 대한 사법처리를 포함해 초고강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농협의 개혁논의는 정권초기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해왔지만 그때마다 정치적 입김이 작용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농협은 지나치게 비대화 관료화되어 운영이 방만해졌으며 특히 생산 유통 판매 등 경제사업은 소홀해지고 금융분야에 치중해 돈장사만 한다는 비판이 농민과 단체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번 농협 개혁을 계기로 수협 축협 임협 인삼협 등 다른 협동조합의 개혁작업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실대출〓작년 8월 농협의 부실채권 규모는 9천1백여억원에 달했다. 이중 8천1백억원이 대기업에 물렸다.

대기업 부도 등으로 회수하지 못한 돈이 5천억원, 다른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줄 때 지급보증을 서줬다가 떼인 돈이 3천억원대에 이른다. 농민과 도시서민들의 예금으로 조성한 돈을 고스란히 부실 대기업에 날린 것이다.

◇농가부채 악화 부추겨

농협은 외환위기가 한창인 98년초 자금난에 허덕이던 고려증권과 동서증권에 각각 3백억원과 4백억원을 콜자금으로 빌려줬다. 두 증권사가 퇴출되면서 대출금 7백억원은 부실채권이 됐다. 96년말 4천8백65억원이던 대기업 여신액은 외환위기가 절정에 이른 97년말 7천여억원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농협은 작년 한해에만 3천1백42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는 바람에 예금 증가에도 불구하고 당기 순이익을 3백72억원밖에 내지 못했다.

서민 금융기관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농협의 금리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래서 농민과 도시서민들을 상대로 ‘돈장사’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농협의 예대마진은 5.56% 포인트로 시중은행보다 오히려 2%포인트가 높다. 상호금융 대출금리는 연 14.5%. 작년엔 한때 연 16%선을 웃돌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농협단위조합이 운영하는 장례사업도 장례용구 등 각종 비용에서 바가지를 씌워 원성을 사왔다.

농민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농민을 위한 조직체로 출범한 농협이 농가부채 악화를 부추기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방만한 경영〓지난해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는 농협중앙회에서 더 심각한 상황.

농협중앙회 직원의 1인당 월평균 급여는 2백63만원. 상용근로자 5백인 이상의 민간기업 평균 급여인 월 1백77만원보다 80만원 이상 많다.

같은 농협 직원이라도 단위조합 직원의 급여는 중앙회 직원의 절반정도에 불과한 실정. 경기도의 한 단위조합 직원은 “중앙회의 봉급수준이 공개되면서 농협을 대하는 농민들의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고 털어놓았다.

◇농협직원들 『올것이 왔다』

20여가지 명목을 붙여 수당을 지급하는 비정상적인 급여체계도 농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중앙회 모부장은 연월차 수당으로 1년간 1천2백88만원을 받았다. 그래도 농협측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지급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혁의 방향〓감사원 감사와 회장 사퇴 등 일련의 과정은 협동조합 통폐합 등 개혁작업을 위한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인식되고 있다. 농협 내부에서도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

감사원 감사와 회장 사퇴 등에 이르는 급박한 사태 전개는 농협 개혁을 둘러싼 이해 관계자의 첨예한 대립으로 한층 복잡한 양상이 됐다는 분석.

실제로 정부가 협동조합 통폐합에 나선 지난해 7월 이후 최근까지 농림부와 협동조합의 고위간부에 대한 투서가 난무했다.

◇정치실세 연루설 나돌아

농협이 중앙회 전체직원 1만7천2백여명중 20%인 3천5백여명에 대해 구조조정을 실시하려 하자 노조가 회장실을 점거하는 등 내부 반발도 거셌다.

특히 농협의 금융부문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조직으로 금융거래에 있어서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일각에선 농협자금의 부실배경엔 정치실세와 정부부처 농협고위임원간 부패커넥션이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따라 이번 농협사건은 향후 감독체계 개편 등 금융정책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농림부가 협동조합측의 조직적인 반발로 중단했던 농협과 축협 임협 인삼협 등 4개 협동조합의 통폐합 작업도 다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