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불을 지르는 것일까. 연쇄방화 공포가 번지고 있다.
8일 밤 서울시내 도심에서 발생한 연쇄 화재는 반경 2㎞를 안팎으로 하는 두군데에서 12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6일 밤 청계천 주변에서 발생한 연쇄화재 12건과 닮은 꼴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정신착란 환자의 소행일수도 있으나 국제통화기금(IMF)경제난 속에 극도의 좌절을 겪은 사람이 사회적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표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연쇄화재의 특징 ▼
비교적 제한된 공간에서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시간차 공격’형의 특징을 띠고 있다.
6일밤 화재는 서울 중구 신당1동에서 처음 발생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까지 서쪽으로 이동하다 다시 동쪽으로 고개를 틀어 종로구 창신동과 숭인동 지역을 훑었다.
8일밤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처음 발생했던 화재는 은평구 응암동쪽까지 동쪽 직선상으로 달려가다 한동안 멈춘 뒤 9일 새벽 종로구 교남동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서대문구 충정로, 북아현1동 등 반경 1.5㎞내에서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렸다.
피해규모가 대개 수십만원대에서 수백만원대로 크지 않으면서도 잇달아 번지는 ‘게릴라’식 속성을 띠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화재수사 ▼
당초 6일 발생한 12건의 화재에 대해 누전으로 인한 화재에 단순불장난이 우연히 겹쳤다는 시각을 보인 경찰은 8일 또다시 비슷한 화재가 발생하자 당황하는 모습이다. 경찰은 6일의 화재 12건을 불장난(7건) 전기합선(4건) 담뱃불실화(1건)로 분류하고 연쇄방화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8일밤 화재에서는 현장에 휘발유 냄새가 강하게 남아있고 대부분 불길이 외부에서 발생하는 등 방화 징후가 뚜렷해 경찰도 놀라고 있다.
▼전문가분석 ▼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최인섭(崔仁燮·45)연구위원은 “범행대상이 무차별적이고 사회적 불만에서 비롯됐다면 고급승용차나 고급상가를 목표로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욕구불만의 10대나 정신착란자의 소행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이훈구(李勳求)교수는 “방화는 욕구불만을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정신질환상태에서 일어난다”면서 “IMF쇼크의 후유증이 단순한 반달리즘(문화파괴)의 형태를 넘어 방화로까지 나타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예방대책 ▼
경찰은 일단 서울 31개 경찰서 2천8백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시내 6백54곳에서 심야순찰 및 방범활동 강화에 들어갔다. 경찰은 범죄를 저지른 뒤 곧바로 이동하는 방화범의 특성상 경찰의 조기출동이 중요하다며 시민들의 신속한 신고를 부탁했다.
〈권재현·선대인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