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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정은아/한국영화 사랑하는 법

입력 | 1999-01-26 19:10:00


지난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감독과 사적인 공간에서 만난 일이 있다. 대성공을 거둔 신인 감독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제 영화 아직 못 보셨지요”라는 그의 말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를 통해 주인공이며 스토리, 기획에서부터 제작에 얽힌 에피소드, 비평까지 꿰고 있었지만 허감독의 예리한 더듬이를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바빠서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도 제 영화에 대해 잘 알고 계시더군요. 고마운 일이지요.”

담담한 그의 말투로 보아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나로선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부랴부랴 영화를 찾아 봤지만 그 일이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다. 제대로 보고 듣지도 않은 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과 남의 견해를 나의 시각인양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일에 직업적으로 익숙해 있는 것이 아닌지. 더구나 부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화계가 안고 있는 위기의식을 충분하게 공감하지 못했다는 자성도 들었다.

그후로 정말 열심히 구석구석 찾아다니고 있다.전부를 섭렵할 수는 없다 해도 이 시대에 가장 화제가 되고 관심을 끄는 문화상품을 놓친다는 것은 대중매체 종사자의 ‘직무유기’가 되겠기 때문이다.

나는 맛난 음식, 좋은 책, 볼만한 영화의 나누기를 좋아하는 데 얼마전 내개 좋은 영화를 소개해준 친구들이 있었다. 영화관 앞에서 줄을 서 있다 우연히 이야기늘 나누게 된 대학교 1,2학년쯤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었다. 이들은 인상깊게 본 우리 영화 두편을 소개해 주고는 말끝에 “한국 영화 많이 사랑해 주세요”라며 꾸벅 인사까지 하고 갔다. 방송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를 거리에서 듣다니. 그 또랑또랑하고 건강한 웃음소리에 참 유쾌했었다.

문화는 이제 단순한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 계층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고 설명하는 중요한 키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는 분명 우리 문화를 주체적이면서도적극적으로누리고소비하려는 특성이 있는것같다. 한국영화 스크린쿼터사수를위해많은 영화인들이 힘을모았지만 우리영화의 또다른힘은 바로 주소비층인 젊은 관객들이 아닐까. 우리 영화의 잠재력에 신뢰를 갖고박수를보내고 대가를지불할 ‘준비된 관객’들에게 영화인들은 계속 좋은 영화로 보답해 주길 바란다.

정은아(프리랜서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