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을 받아온 LG그룹이 반도체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는 회사 관계자들이 모두 함구하고 있어 상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경위야 어찌됐든 LG그룹이 양보함으로써 그동안 재계 최대의 논쟁거리였던 반도체빅딜은 일단 결판이 났다. 또 7개 사업분야에 대한 5대 재벌간 빅딜도 최소한 외형상으로는 봉합의 수순을 밟게 됐다.
그러나 LG그룹의 선언은 형식이 좀 이상했다. 빅딜이 재계 자율로 추진됐다면 사업조정에 대한 합의는 양대 재벌 총수끼리 만난 자리에서 발표가 됐어야 옳다. 왜 그룹회장이 청와대를 찾아가 포기의사를 밝혀야 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경제가 특수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빅딜에서 어느 정도 정부의 역할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치권의 개입수준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 여론도 많다. 빅딜이 구조조정의 유일한 방법이어야 했느냐에 대해서도 이론의 여지는 있다. 경제는 경제논리로 해법을 찾았어야 했다.
정부가 일단 개입한 이상 대재벌간의 사업교환에서는 공평성이 유지되어야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빅딜과정에서 특정재벌이 유난히 비대해지고 여타 그룹이 상대적으로 불만을 갖게 된다면 두고두고 말이 남게 마련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번 빅딜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빅딜이 지상과제라고 가정한다 해도 그 때문에 특정기업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는 정산과정에서 형평을 유지해주어야 한다.
정부주도의 이번 반도체 빅딜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왕 결론이 났으면 국가경제 전체를 생각해서라도 원만하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해당기업들은 신속하게 후속협상을 타결해 업무상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원칙에만 합의하고 통합작업이 지지부진한 몇몇 다른 사업분야에서도 재벌들은 지나치게 집착하는 자세를 버렸으면 한다. 시간을 끌면 된다는 식의 재래식 생각은 현상을 너무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일 수 있다.
재벌들은 이제 정부가 요구한 대로 내놓을 사업과 집중육성할 사업부문을 정했다. 또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라 기업인들은 당황하고 침통해 하고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들에게 사업의욕을 북돋워주는 일이다. 건전하게 부(富)를 이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호불호를 떠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이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중 하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