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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오래된 정원(2)

입력 | 1999-01-02 18:49:00


재소자 이발소의 중년이 넘은 반장은 십오년짜리 강짜였는데 여기 말대로 십년이 넘으면 누구나 순한 양이 되어있기 마련이었다. 이발소 동료의 말을 들으면 열차 강도를 했다는데 여기서는 수감 동기를 묻는 일이 서로가 금기로 되어 있어서 자세한 얘기는 듣지못했다. 그는 십 삼년째 살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사회 참관도 다녀왔다. 같은 장기수끼리는 서로 예의가 있어서 그가 나의 이발을 전담해 왔다. 그의 기술은 전국 재소자 기능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받은 솜씨였다. 그는 보통 때처럼 나의 머리를 깎기 전에 어떻게 깎을 거냐고 묻지 않았다. 이발소에서는 누구나 내가 이미 삼개월 전에 삭발면제증을 받은 것을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머리를 규정대로 깎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는데 별 거 아닌 관구계장의 도장이 찍힌 작은 쪽지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이 쪽지는 자유로 가는 문이 삼 개월 앞에 열려 있다는 증명서나 마찬가지여서 만기가 된 죄수들은 부적처럼 윗주머니에 사탕봉지로 나오는 비닐봉투에 싸서 간직했다. 나는 벌써 석 달 전부터 머리를 기르고 있었던 셈이다.

조금만 다듬어 드리지요.

그는 섬세한 가위질로 조심스럽게 귀 밑을 다듬어 나갔다. 나는 그저 미안해서 의자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머리를 숙이고 나직하게 물었다.

내일이죠?

그런 모양이오.

그가 다시 말없이 가위질을 했다. 나는 면도를 하느라고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천정을 향하여 누워 있었는데 위에서 물기가 똑똑 떨어졌다. 눈을 떴다. 그가 면도를 멈추고 돌아서서 눈가를 훔치고 있었으니 아마도 내 얼굴에 눈물을 떨군 모양이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의 작업이 계속 되기를 기다렸다. 그가 잠시 후에 면도를 다시 시작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향내나는 스킨을 턱과 뺨에 듬뿍 발라 문지르고 사회에서처럼 마른 수건으로 목과 귓가를 부드럽게 닦아 주고나서 그는 말했다.

다 됐습니다.

고맙소.

하면서 일어나려고 했더니 그는 나의 어깨를 지긋히 누르며 아까처럼 속삭임으로 말했다.

오 선생님, 제가 잠깐 기도를 하면 안될까요?

나는 잠깐 어리둥절 했다. 기불천 교인도 아니고 기도를 해본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불천 교인이란 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신도들이 재소자의 교화를 돕기 위해서 먹을 것들을 싸들고 종교 집회를 하러 오는데 그때마다 종교와 종파를 바꾸어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놀리는 우스개 말이었다. 나는 그 잠깐 동안에 우리의 저 긴 긴 고독을 생각했다. 그는 내 기억을 통하여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그의 기도를 오래 떠올릴테니까.

그렇게 해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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