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는 순종(純宗)이 1908년 창경궁에 세운 이왕가(李王家)박물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로 90주년이다. 일제의 총독부박물관을 거쳐 해방 후 국립박물관이 된 지도 반세기를 훨씬 넘겼다. 6·25 당시에는 부산으로 피란가기도 했고 환도 후에는 덕수궁 석조전(53년), 경복궁 현 민속박물관(72년), 옛 총독부건물(86년)을 거쳐 현재는 경복궁 한 모서리 건물(96년)에 옹색하게 들어 있다. 2003년 용산에 새 박물관이 건립될 때까지의 임시박물관이다.
▼임시 박물관인 탓에 관람객의 발길도 많지 않다. 클린턴 미국대통령마저 방한중 같은 경내의 민속박물관으로 안내돼 중앙박물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어느 나라나 중앙박물관은 그 나라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어 누구나 찾는 곳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국빈도 방문할 수 없는 딱한 처지가 돼버렸으니 안타깝다.
▼미국대통령뿐만 아니라 앞으로 2년 간격으로 치를 세계적 행사인 2000년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와 2002년 월드컵에 올 손님도 임시 박물관으로 맞아야 한다. 생각하면 낯부터 뜨거워진다. 박물관의 크기로 국력을 자랑하듯 하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두 행사를 계기로 내한할 세계인 앞에 중앙박물관보다 민속박물관을 보여줘야 할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다.
▼용산 새 박물관은 8%의 공정을 보이고 있지만 2003년 개관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건물만 세운다고 박물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획기적인 전시기획으로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박물관으로 태어나길 바란다. 우리 역사와 문화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민속박물관이 중앙박물관을 대신하는 임시변통의 사태가 계속돼서는 안된다.
임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