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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칼럼]두려워하지 말자

입력 | 1998-01-19 08:13:00


산중에 외떨어져 살면서 내가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혼자서 외진 곳에 살면 무섭지 않으냐다. 무서워하면 홀로 살 수 없다. 무서움의 실체란 무엇인가. 무서움의 대상보다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 무서움이 일어난다. 밤이나 낮이나 똑같은 산중 환경, 다만 조명상태가 밝았다 어두웠다 할 뿐인데 마음에 그림자가 생기면 무서움을 느낀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체로 대한다면 그 품은 한없이 너그럽다. 무섭기는 갑자기 돌변하는 인간의 도시다.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건 사고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 희망적 의지갖고 살아야 ▼ 두려움의 실체보다도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두려움은 몸의 근육을 마비시키고 혈액순환에도 영향을 미쳐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명의 활동을 저해한다. 우리 마음은 자력과 같아서 내부에 두려움이 있으면 온갖 두려움의 대상들이 몰려온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 두려움이 옮겨간다. 병균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도 전염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순례자가 순례의 길에서 흑사병(페스트)과 마주치자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로 가는 길이냐?” 흑사병이 대답했다. “바그다드로 5천명을 죽이러 가는 길이오.” 며칠 뒤 순례자는 되돌아오는 흑사병을 보고 그에게 따졌다. “너는 일전에 나한테 바그다드로 5천명을 죽이러 간다고 했는데, 어째서 3만명이나 무고한 생명을 죽였느냐?” 이때 흑사병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내가 말한 대로 5천명만 죽였소. 그 나머지는 두려움에 질려서 자기네들 스스로가 죽은 것이오.” 두려움이 사람들을 죽게 한 것이다. 세상사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응하고 있다. 이것이 우주의 메아리이며 그 질서다. 어두운 생각 속에 갇혀서 살면 우리들 삶 자체가 어두워진다. 애걸복걸하면서 국제구제금융으로부터 묵은 빚을 갚기 위해 새 빚을 얻어와야 하는 우리네 처지를 생각하면 착잡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남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우리 분수를 모르고 헤프게 살아온 결과임을 상기할 때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이런 경제난국이 아니면 무슨 힘으로 허세와 과시와 과소비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살아 있는 우주의 흐름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타난 결과다. 어떤 현상이든지 우리의 초대를 받아 우리 앞에 온 것이지 우연히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지나간 과거사에 얽매일 것 없이 새로 시작한다는 결의와 각오다. 인간의 행복과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근원적으로 생각을 돌이켜야 하고, 그동안 잘못 길들여진 생활습관을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한탄의 늪에서 벗어나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 인생은 끝없는 실험에 불과 ▼ 마음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를 이어주는 법칙은 놀랄 만큼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걱정과 근심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늘 걱정 근심거리만 생긴다. 그러나 희망에 넘치고 신념에 차 있는 마음은 희망과 신념에 찬 우주의 기운을 자기쪽으로 끌어들인다. 비관과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낙관과 희망은 건전한 삶에 이르는 재기의 통로다. 오늘과 같은 암담한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죽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끝없는 시도요 실험 아닌가. 걱정 근심을 미리 가불해 쓰지 말고,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얼어붙은 겨울 속에서도 봄은 움튼다.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