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이행협상 결과는 참담하다. 부실 금융산업의 대대적인 정비는 예상했으나 단기자본시장의 조기 개방과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은행 인수까지 허용함으로써 파장은 상상 밖으로 커지게 됐다. 이로써 금융산업은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빅뱅식 구조개편, 시장개방이라는 3각 파도에 휘말렸다. 이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지 못하면 금융과 산업이 급속하게 외국자본에 종속되는 수모와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IMF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이 자금지원을 조건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킨 것은 유감이다. 한국경제의 절박한 상황을 기화로 자국 이익을 챙기는 태도는 우방으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미국 재무부차관은 협상기간 내내 서울에 머물면서 IMF협의단을 배후조종, 시장개방압력을 가했다. 일본 또한 자금지원을 무기로 수입선다변화 조기 폐지를 얻어냈다. 미국내에서도 IMF이행조건이 너무 지나치다는 견해가 많다. 한국이 일본 등으로부터 긴급자금을 차입하려던 계획을 미국 정부가 차단, IMF를 앞세워 구제금융을 주면서 개방압력을 행사했다는 미국 시사주간지의 폭로는 한국 국민을 분노케 한다. 우리 정부는 약속한 대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서둘러야겠지만 미국과 IMF도 한국 실정에 맞춰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할 것이다. 단기채권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인 1인당 주식투자한도 폐지와 종목당 투자한도 대폭 확대는 자본시장의 전면개방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되면 단기적으로 외화유입 효과는 있지만 단기금리차를 노리는 투기성 핫머니가 대거 몰려들어 국내시장을 좌지우지할 것은 뻔하다. 사소한 여건 변화에도 거액의 자금이 일시에 움직이는 핫머니의 속성상 언제 금융시장을 대혼란에 빠뜨릴지 알 수 없다. 우리 경제가 몇몇 국제 펀드매니저의 손에 놀아날 우려가 높다. 개방에 앞서 외국자본의 유출입경로와 과실송금절차 등에 대한 철저한 관리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외국금융사의 국내 현지법인 설립과 은행 및 기업 인수합병을 허용해 금융시장 안방을 몽땅 내준 셈이다. 첨단경영기법으로 무장한 외국금융사가 국내금리의 3분의1밖에 안되는 자금을 들고와 금융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많다. 금융뿐이 아니고 유망기업 사냥에까지 나서면 우리 경제가 외국자본에 종속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벼랑끝에서 백기(白旗)투항한 이상 이제 IMF와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춰 경제체질을 튼튼히 하는 일만 남았다. 단기간에 그리고 혁신적으로 금융개혁을 단행해 금융시스템을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국제수지개선 외환보유고확충을 통해 금융 전면개방시대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