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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56)

입력 | 1997-11-15 20:30:00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24〉 나는 여자를 데리고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촌이 일러준 그 지하매장소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낯선 여자와 묘지 안에 들어앉아 있으려니까 여간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끝내 그녀에게 아무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 또한 나에게 아무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으려니까 마침내 나의 사촌이 묘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는 물을 담은 대야와 한 자루의 마른 횟가루와 그리고 괭이처럼 생긴 손도끼를 들고 있었습니다. 묘지 안으로 들어온 사촌은 곧 매장소 한가운데 있는 묘석 앞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손도끼로 두드려 석문을 찾아내어 옆으로 밀어젖혔습니다. 그리고는 흙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석문을 열고 흙을 파내는 동안 영문을 알 리 없는 나는 아무말하지 못하고 그가 하고 있는 일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곁에 있는 여자 또한 아무말하지 않고 사촌이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흙을 파내려니까 이윽고 커다란 철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사촌은 괭이를 내려놓고 그 철판을 들어올렸습니다. 그것을 들어올리자 그 밑에는 구불구불한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그제서야 사촌은 여자를 향해 말했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소. 모든 것은 당신 좋을대로 하구려!』 그러자 여자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촌은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여보게 사촌, 나는 자네가 나를 위해서 마지막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으리라고 믿네. 내가 이 속으로 들어가거든 전과 같이 철판을 덮고, 그 위에 흙을 채워 주게. 그리고 돌을 덮은 뒤 이 자루 속에 든 횟가루를 물에 이겨 발라 주게. 누가 보아도 오래된 묘를 최근에 파헤쳤다고는 생각할 수 없게끔 말이야. 내가 자네한테 하고 싶었던 부탁이란 바로 이것이었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때 사촌은 덧붙여 말했습니다. 『오, 자비로우신 알라시여. 사촌을 잃은 슬픔으로 제가 고통받지 않게 하여 주소서! 오, 내 사랑하는 사촌이여!』 이렇게 말한 사촌은 곧 여자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더니 그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처음 한동안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사촌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철판을 전과 같이 덮고 흙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흙을 다 채운 뒤에는 돌문을 닫고 회를 물에 이겨 발랐습니다. 술에 취해 머리가 멍하였던 터라 정말이지 나는 거의 무의식중에 그 일을 해치웠습니다. 따라서 나는 내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일을 마친 나는 비틀거리며 궁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보니 백부님은 마침 사냥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밤 백부님 얼굴을 대하지 않고 그냥 잤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술기운으로 몹시 머리가 무거웠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장난같이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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