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와 한국자연보호중앙협의회는 공동으로 지난 7월27일부터 사흘간 베트남 북동부 캐트바국립공원에서 한국―베트남 수교 5주년 기념 공동학술조사를 벌였다. 대우그룹이 후원한 이번 학술조사는 열대몬순 기후에 속하고 건기 우기가 뚜렷한 현지의 고유한 생물상을 밝히고 훼손돼가는 자연환경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베트남의 북쪽끝 하이퐁. 여기서 쾌속정을 탄다. 바다의 표면장력을 딛고 1시간여 달리면 다다르는 할롱만(灣). 망막이 지칠 정도로 반복되는 3천여개의 섬. 저마다 기이한 섬의 숲. 용(龍)의 몸부림이 만들어 냈다는 전설이 그럴 듯하다. 해오라기가 인도하는 물길을 따라 바다를 가르고 나가면 저멀리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캐트바(Catba)다. 지난 8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수려한 경관만큼이나 갖가지 생물로 가득하다. 여태까지 보고된 것만도 식물 8백10여종과 포유류 15종 조류 21종 등. 석회암 토질이라 다양한 생물상(像)의 분포가 제한된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학술조사 한번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까지는 미지 생물들의 보고(寶庫)요 은신처다. 이곳에는 경작과 고기잡이 등으로 살아가는 원주민 1만2천여명이 1만7천㏊의 공원에 흩어져 있다. 물이 괴지 않는 석회질 땅에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열대우림 기후. 집집마다 지붕에 내린 비를 모아 지하 탱크까지 뻗어내리는 수관(水管)의 모습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끈질긴 함수를 읽어낸다. 양치식물과 야자수가 드리운 그림자 밑으로 메꽃버섯이 돋아나고 이들이 뒤덮은 땅꺼풀 위에 왕나비와 독거미 악어 원숭이 등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이곳. 특히 공원 한가운데 5백70㏊에 이르는 열대원시림지역(Core Area)은 생물의 종합전시장이다. 나한송(松)류가 이루는 32㏊는 이 지역 최대의 군락. 한반도에 서식하는 오갈피나무와 비슷한 것으로 판단되는 쉐프레라 등 2개 속(屬)의 식물이 이번 조사에서 채집됐다. 캐트바 현지에서는 여태까지 기록되지 않은 미기록종. 화려한 풍모와 색채의 열대나비는 캐트바섬에 지천이다. 한국에는 1,2개의 표본밖에 없을 정도의 희귀종인 남방오색나비 별선두리왕나비 남방공작나비 등이 섬 전체에 꽃가루처럼 흩어져 있다. 이들은 여름이면 북상하는 태풍을 타고 이동, 길잃은 나비(迷蝶·미접)로 한반도 남부 도서지역에서 드물게 목격되기도 한다. 흰머리원숭이라는 별칭을 지닌 잎사귀원숭이(Leafmonkey)는 캐트바 고유종. 과거 빙하기때 움츠린 수위를 통해 대륙에서 이주, 이후 해빙기를 통해 고립되면서 독특하게 분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표범류의 레오포드, 점박이사슴, 큰 다람쥐 등 다양한 야생종들의 거친 내달음으로 대지는 뜨겁다. 수목과 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호흡. 그러나 인간의 자연적응 과정에서 돌출한 욕심과 예외없는 무지는 파괴의 시린 칼날을 이곳 캐트바에 꽂았다.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져나가는 검은색 화전(火田). 나무는 하릴없이 베어지고 핵심 수림보호지역마저 염소와 양의 방목으로 훼손되어 간다. 이들 가축은 특정한 풀만을 골라 먹으며 배설물은 숲바닥에 과다한 질소를 공급해 초본식물의 생존을 뿌리째 위협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국립공원측이 버려진 농경지에 다년생 과수를 심도록 권장하면서 가구당 매년 2천5백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과수유지비조로 지급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호응은 신통찮다. 「왜 그래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주민들. 굳이 과수를 심지 않아도 충분히 생계가 보장된다는 얘기다. 산림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인센티브 개발과 수림 훼손시 단호한 제재라는 「당근과 채찍」의 공식이 필요한 때다. 캐트바섬 북서부를 둘러싼 망그로브숲의 파괴는 더욱 심각하다. 육지와 바다가 연결되는 개펄지역에 형성된 망그로브는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새우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주석 등의 광물이 풍부한 곳이다. 주민들은 망그로브를 밑둥째 베어내고 이 지역을 새우양식과 주석채취의 장소로 전용한다. 완충지대의 종말. 밀려오는 바닷물로 해안가 농경지는 염해(鹽害)에 시달리고 해양과 육상생물의 다양성은 무서운 속도로 쪼그라든다. 천혜(天惠)를 머금었던 자연은 이곳 캐트바에서도 생존과 개발을 부르짖는 인간의 거듭된 돌팔매에 서서히 토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