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아들 인걸(11)이가 미술시간에 그린 것이라며 대만국기가 그려진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순간 나는 그동안 사업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조국에 대한 교육을 너무 소홀히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사람이 태극기를 그려야지 대만국기를 그리면 되느냐. 우리가 대만에 살지만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나무랐다. 며칠뒤 담임교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국기를 그리는 시간이 또 있었는데 인걸이가 가만히 앉아만 있더라는 것이다. 『왜 그리지 않느냐』고 물으니 『우리나라 국기는 태극기이기 때문에 대만국기를 그릴 수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 담임은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국가관이 강한 줄 몰랐다』며 『칭찬 좀 해주라』고 당부했다. 담임도 가끔 아들을 격려해주었다. 우리가 외국인이지만 민족적 자긍심과 뿌리를 잊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교육방식이 고마웠다. 나는 유학을 왔다가 진로를 바꿔 무역회사를 운영하면서 17년째 대만에 살고 있다. 아내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한국말을 못하고 그러다보니 아들도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다. 국기그리기가 계기가 되어 아들을 한국의 초등학교에 한학기동안 다니게 해 한국말을 배우게 했다. 아직 서툴지만 한글로 된 안데르센동화책을 읽기도 한다. 아내도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흔히 중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배타적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대만인들은 매우 개방적이다. 미국은 물론 50년동안 식민통치를 한 일본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좋은 것은 쉽게 받아들이는 특성이 오늘의 대만을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한 동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과는 과거 「형제의 나라」로 통할 정도였지만 단교조치와 함께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다. 그러나 대만인들을 사귀다보면 아직도 가까운 나라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나라 민간교류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선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