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지원한 식량을 비롯한 대북 구호물자는 2억6천5백만달러어치에 이른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와 유엔, 그리고 국제민간단체에서도 막대한 지원을 했다. 그런데도 북한당국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받은 구호물자의 전체 통계를 밝힌 바 없으며 주민들에 대한 배급현황에 대해서도 보고한 바가 없다. 그래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에서 지원한 막대한 식량과 구호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굶주리는 우리 동포들에게 얼마나 지원되고 있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 ▼ 지원식량 어떻게 쓰이나 ▼ 지난 95년에 우리가 지원한 15만t의 쌀이 군량미로 전용됐다고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직접 밝혔음에도 우리 정부는 그에 대한 아무런 대책없이 또 5만t의 옥수수를 지원했다. 그러나 인도주의를 앞세워 대북지원에 적극적인 일부 우리 민간단체들과는 대조적으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단체들은 식량지원을 전면 재검토하는 중이다. 그들의 인도적 사업이 종종 악독한 정치세력을 이롭게 하는 비인도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얼마전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기아로 고통받는 원주민들을 지원해 온 국경없는 의사회(MSF) 회장을 만났다. 그는 필자에게 『인도적 식량지원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재검토를 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현지에 파견한 자원봉사요원이 지역 군벌간의 분쟁속에서 희생된 일이 많으며, 둘째, 자신들의 식량원조 및 구호노력이 종종 정치세력과 군사지도자들의 농간에 의해 주민들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오히려 원조를 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주민들을 굶겨 선전용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기 때문이라 했다. 이처럼 북한의 金正日(김정일)도 아프리카의 군벌들처럼 적대계급 반체제 정치범가족들과 아동들을 굶기면서 그 비참상을 사진과 비디오로 외부세계에 선전해 식량원조를 받아내고 이를 군사력 강화와 독재체제 유지에 유용해 왔다. 거기다 한술 더떠 식량위기에서 구원해준 우리 정부와 대통령에게 대남방송을 통해 갖은 욕설과 비방을 늘어놓는가 하면 북한군을 비무장지대(DMZ)에 침투시키고 아군 GP에 총격과 포격을 가하는 난동을 부렸다. 그런데도 우리의 일부 종교단체들은 북한군이 DMZ를 도발한 바로 다음날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명동성당까지 「기아와 고통에 처한 북녘동포돕기―평화대행진」을 벌였다. 피해자인 우리에게 오히려 평화를 강요하고 도발 당사자에게는 쌀만 주자는 일부의 논리는 마치 강도를 당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고 강도짓을 계속하겠다는 범죄자에게 돈을 계속 주라는 「굴복의 논리」나 마찬가지다. ▼ 인도주의만으론 안돼 ▼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들의 이런 신중을 결여한 대북지원이 결과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체제붕괴를 방지해주어 또다시 민족의 재난을 불러일으키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미국 의회는 대북지원에 대해 인도적 지원조건과 지원물자 남용방지 조건을 결의해 당사자인 한국보다 더 강경한 정책을 입안했지만 반대로 클린턴 행정부는 무조건 인도주의만을 내세워 대북지원을 강행, 갈등을 빚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신탁통치를 강요하고 6.25직전에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등 대한반도 정책에서 많은 역사적 실수를 저지른 미국이 또 다시 대북정책에 실패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치고 빠지는, 공갈하고 갈취하는 대남정책에 사분오열돼 왔다. 동시에 북녘동포들의 고통도 가중돼 왔다. 이 모든 졸책은 여기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진정한 인도주의와 평화통일은 북한정권의 실체를 직시하는데서 시작한다. 이철승(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