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江湖)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 현대 문학은 국토의 산과 물을 읊고 이야기하는데 깊은 뜻과 애정을 두어왔다.
선경후정(先景後情), 자연의 풍광을 읊고 인간의 심회를 푼다는 우리 시가의 전통은 현대문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희로애락을 푸른 봉우리와 하얀 물줄기에 기대 문장에 담게 해왔다.
휴가철이 절정으로 향하는 7월 하순, 산과 바다로 떠나기에 앞서 배낭에 소설을, 손에 시집을 들고 우리 문인들이 강산에 깃들인 삶과 역사를 어떻게 노래해 왔는지 현지에서 읽어보도록 하자.
설악산으로 갈 독자들은 시인 고형렬과 황동규의 시집들을 구해보자. 정선으로 차를 몰아 옛 시인들이 산수를 노래하던 절경 몰운대에서 황동규의 「몰운대행」을 한 구절읽은 다음, 울산바위가 멀리 내다보이는 미시령을 넘으면서 큰 바람을 쐬어보자. 땀 흘리며 정상에 오른 후에는 고형렬의 「대청봉수박밭」이 기다리고 있다.
「청봉이 어디인지. 눈이 펑펑 소청봉에 내리면 이 여름밤/나와 함께 가야 돼. 상상을 알고 있지/저 큰 산이 대청봉이지/큼직큼직한 꿈 같은 수박…/사는 거야. 별거겠니 겨울 최고봉의 추위를 느끼면서/걸어. 서릿발 친, 대청봉 수박밭을 걸어/그 붉은 속살을 마실 수 있겠지…」.
수박속살을 한 입 베어물고 속초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또 한번 고형렬이 일으키는 「사진리 대설(大雪)」이 삼복 더위를 잊게 한다. 동해안을 따라 도보여행을 하면서는 오른쪽에 우람한 자태로 북상하고 있는 산줄기들을 바라보며 「태백산맥」을 읽어보자. 하지만 이 대하장편의 주요 무대는 전남 벌교임을 알아두자.
동해를 보면서 시인 고은의 「독도」도 한 구절 외워보고 낙동강 하구에 이르러서는 지난해 작고한 김정한 선생의 「낙동강의 파수꾼」 책갈피를 넘기며 문인들의 국토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 것인지 되새겨 보자.
남해 상주해수욕장으로 가서 해변에 발을 담그고 꼭 읽어봐야 할 시집으로는 이성복의 연시(戀詩)「남해 금산」이 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에 나 혼자 잠기네」.
서해안쪽으로 건너가기 전에 여수의 밤 풍경을 구경하고 싶은 독자들은 한말숙의 「여수」나 한강의 「여수의 사랑」을 일독해볼 만하다. 거기서 배를 타고 제주로 향하기 전에는 문충성의 「제주 바다」를 구해서 읽어야 한다. 한라산을 오를 때는 제주 출신 작가 오성찬 현길언의 「한라산」을 구해서 탐라의 현대사에 얽힌 상흔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두면 산행길이 더욱 의미를 가진다. 「백록담」을 노래한 시인으로는 정지용이 있으며 멀리 「백두산 천지」를 시집 제목으로 삼은 이는 백기완이다.
서해안쪽으로 올라가면서는 시인들이 강들을 하나씩 점유하고 있음을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신동엽이 「금강」을, 신경림이 「남한강」을, 황금찬과 이근배가 「한강」을 거느리고 있다. 전라북도 두메산골에서 초등학교 분교 교사로 몸담고 있는 시인 김용택은 남해로 빠지는 「섬진강」을 가지고 있다.
신동엽 신경림 김용택 등 창작과 비평사가 배출해낸 시인들은 민족주의적 낭만적 정한을 바탕에 깔고 모국 산천에 배어든 아픈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 작고 시인 신동엽은 금강 줄기에 흘러든 동학 농민들의 끝나지 않은 조국 사랑을 대하 서사시로 노래했다.
「하늘/잠깐 빛났던 당신은 금세 가리워졌지만/꽃들은 해마다 강산을 채웠다/태양과 추수와 연애와 노동/…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영원의 하늘/끝나지 않은/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논길/서해안으로 뻗은 저녁 노을의/들길, 소담스럽게 결실한 붉은 수수밭 사잇길에서/우리의 입김은 혹/해후할지도 몰라」(「금강」).
갈 수 없는 빈한의 땅 북녘을 앞에 두고는 38선이 만들어진 후 염상섭선생이 펴낸 「삼팔선」을 읽을 만하다. 먼 발치에서라도 북녘을 바라보고 싶은 이를 위해서는 월북 문인 이기영의 대하장편 「두만강」과 고은의 대하 서사시 「백두산」이 마련돼 있다.
40년대 이후 우리 지명을 작품 제목 속에 끌어들인 문학단행본으로는 조명희의 「낙동강」 전광용의 「흑산도」 이태의 「천왕봉」 등 소설집 37종, 김해성의 「영산강」 박문서의 「소백산」 조태일의 「가거도」 등 시집 54종이 있다.
〈권기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