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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현지처…「캄」韓人할머니의 「望鄕50년」

입력 | 1997-06-14 19:58:00


지난 43년 일본군에 의해 캄보디아에 끌려온 뒤 54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훈이라는 할머니(73)는 첫눈에도 우리나라 시골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한국할머니였다. 「엄마」 「아버지」 「진동」 등 한국말이라고는 단 몇마디 밖에 할 줄 몰랐지만 「한핏줄」이라는 느낌은 긴 말이 필요 없었다.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은 백마디 말보다도 더 지나온 세월의 고난과 아픔을 설명해 주었다. 훈할머니가 기억해내는 한국에서의 자신의 이름은 「하나」(花)로 이는 당시 창씨개명에 따른 이름이었다는 것. 훈할머니는 일본경찰에 의해 다른 처녀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끌려온뒤 일본군 병영을 전전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당시 일본군 대좌였던 사람을 만나 그때부터 그의 현지처 역할을 했다는 것. 지난날의 기억과 한글을 잊어 종군위안부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정황으로봐 위안부할머니임은 틀림없는 갓 같았다. 훈할머니는 일본군 대좌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이 「나미」였다고 기억했다. 현재 훈 할머니는 프놈펜에서 동쪽으로 80킬로 떨어진 수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외손녀딸과 외손녀사위 등의 부양을 받으며 어렵게 살고 있다. 훈할머니는 다다꾸마대좌가 떠나고 캄보디아에 혼자 남게되자 생계를 이어가기위해 캄보디아인 남성과 결혼,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아들은 폴 포트정권의 대학살때 죽었다. 현재 훈할머니의 가장 큰 희망은 죽기전에 고향마을인 진동에 한번 가보는 것. 그러나 이제는 한국말도 전혀 못하고 친지 이름도 기억할 수 없어 친척이나 옛 친구를 만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편 훈할머니의 이야기가 캄보디아 현지 언론과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에 대해 주 캄보디아 한국대표부 朴慶泰(박경태)대사는 『언론보도는 훈할머니를 도와주는 측면도 있지만 종군위안부 출신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직은 이르다』고 조심스러워했다. 박대사는 『이 할머니가 현재 어렵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과거를 잊고 조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언론보도로 인해 본인이 원하지 않는 과거가 드러나면 본인에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프놈펜〓정동우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