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모이(개방정책)로의 전환으로 급속한 변화의 물결에 휩싸인 도시 하노이. 아오자이(「긴옷」이라는 뜻의 전통의상)와 그린파파야 향기, 시클로(의자가 달린 두개의 앞바퀴를 굴리는 세발자전거)와 모터바이크의 물결, 그리고 「박호」(민족영웅 호치민을 지칭함)가 연상되는 베트남의 수도다. 하노이(한자 하내·河內의 베트남어 발음)란 쏭홍(紅河·붉은 강)의 안쪽에 자리 잡은데서 비롯된 명칭. 자오족 마을을 찾아 나섰다. 길 찾기는 비교적 수월했다. 우선 하노이 남서쪽 74㎞ 지점의 호아빈까지 달렸다. 여기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자동차로 한시간 남짓 산길을 오르면 므엉족 마을이 나오고 거기서 또 한참을 가면 검은 의상이 인상적인 자오족 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채로운 것은 다른 소수민족들과 달리 여기 여자들은 치마가 아닌 우리네 쫄쫄이 바지처럼 허벅지에 착 달라 붙는 섹시한 바지를 입는다는 점이다. 자오족은 라이차오주 사파일대의 고산지대에서도 산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가는 길이 너무 험하고 멀다. 그렇지만 일단 거기에 가면 다양한 자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주말이면 장이 서는데 속칭 「연인들의 시장」이라고 불린다. 자오족 이외에도 인근의 많은 소수민족 젊은이들이 모여 들어 어스름 저녁이 되면 하룻밤을 함께 보낼 짝을 찾느라 분주한 때문이다. 땟국 흐르는 얼굴에 꾀죄죄한 차림이긴 해도 각각의 독특한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청춘 남녀들이 주고 받는 시선은 뜨겁고 순수하기만 하다. 구애의식은 마음에 드는 상대를 향해 부르는 노래와 함께 시작된다. 원시적 사랑이 피어나는 현장인 것이다. 자오족에는 많은 지파가 있다. 검은 쫄쫄이 바지가 특징적인 사람들은 「자오칸쳇」이라 불린다. 붉은 모자를 쓰는 경우는 「자오조」라 한다. 「붉은 자오」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 흰 바지의 자오(자오칸청) 푸른 옷의 자오(자오탄이) 등 무수한 이름의 자오사람들이 존재한다. 반호(혹은 반브엉)라 불리는 조상신을 숭배하는 자오족 사람들은 설날이 되면 통통하니 둥근 떡 모양의 찰떡과 돼지고기, 집에서 빚은 곡주, 차를 준비해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평소에도 집안에 조상 제단을 마련해두고 늘 조상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들은 조상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다른 소수민족들과 달리 고상가옥 보다는 땅바닥에 바짝 붙여 짓는 저상식 집을 선호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술창고를 갖고 있다. 자오족 사람들의 풍습 중에는 정말로 이색적인 것들이 많다. 우선 남자들은 이상하고 재미있는 모양새로 머리카락을 땋아 쪽을 찌는가 하면 변발처럼 머리의 일부를 밀기도 한다. 여자들의 경우 모자를 포함한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도 그렇지만 윗옷 어깨 부위에 조상신을 나타내는 무늬를 수놓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무척 아름다워 이방인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런 자오족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궁합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할 남자가 가난해서 신부집에 주어야 할 지참금을 미처 다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임시 결혼식을 치러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사실은 임부가 출산시 쪼그려 앉아서 아이를 낳는다는 점이다. 직접 보지 않아서, 또 그럴 수도 없어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들은 대로라면 참으로 별난 출산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임신한 여인에게는 전통적으로 금욕이 요구되고 일정한 금기사항이 따르기도 한다. 성년식때 여자들 머리에 초를 입히는 별난 풍속도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매장이나 화장을 하는 대신 풍장을 한다. 자연에서 난 것이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게 마땅하다는 자오족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