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후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활동이 금지된 푸르트벵글러를 대신했던 인물. 비(非)독일계 대학생의 신분으로 베를린 필의 지휘대에 올랐던 천재. 루마니아 태생의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다. 푸르트벵글러 사후 베를린 필의 단원들은 첼리비다케 대신 스타성 강한 카라얀을 상임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첼리비다케는 한때의 전설로 머무르지 않았다. 5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긴 시간동안 전세계의 유명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그는 「현재에 속한 신화」를 고집했다. 분명 그에게는 신화적인 측면이 남아있었다. 최근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를 녹음해 화제가 된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헨델과 마찬가지로 레코딩에 대한 거부가 그것이다. 오랜 기간 그는 연주회장에 가야만 그 실체를 접할 수 있는 「전설」이었다. 만년에 뮌헨 필의 지휘대에서 품격높은 예술을 이끌어가다 작년 세상을 뜬 첼리비다케. 그동안 그의 녹음목록은 극소수로 한정돼 있었다. 레이저 디스크로 발매된 브루크너의 교향곡 몇개 정도가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그가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전집(전4곡·포니트 체트라)의 출반소식은 흥분을 안겨준다. 59년 밀라노 Rai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음반이다. 음반에서 느껴지는 첼리비다케의 면모는 푸르트벵글러적 주관주의자에 가깝다. 4번교향곡 1악장에서 악보를 무시한 듯한 강약해석이나 2악장에서 주제사이의 큰 템포대비가 좋은 예. 그러나 이런 예는 푸르트벵글러에서 만큼 극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거장다운 음의 집중력이다. 50년대 이탈리아 악단이 가지고 있던 기술적인 문제점에도 불구, 음반에서 들려오는 현의 질감은 육중하고 결이 곱다. 더욱이 전 악단원의 주의력을 지휘자의 손끝에 끌어당기는듯한 통솔력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처연한」 브람스상을 재현해준다. 스튜디오의 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덕일까. 유기적으로 거대한 구조를 느끼게 하는 정신력의 깊이가 이 전집에 도사리고 있다. 음반의 음질은 다소 문제를 안고있다. 음반사측은 『최신기술을 사용해 잡음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지나치게 인위적이었던 탓으로 최약주(피아니시모)부분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유윤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