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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꽃잎처럼」

입력 | 1997-04-29 09:03:00


「꽃잎처럼」(공선옥 외 지음/풀빛 펴냄) 우리 시대 최고 수준의 단편작가들은 우리 시대의 상처와 전망에 어떻게, 단순구호가 아니라 문학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우리시대의 문학은 우리시대의 상처 치유와 전망 확립의 중첩이라는 문제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 것일까? 이 거대한, 그리고 진정으로 문학적인 질문을 배경으로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광경들을 펼쳐준다. 이 책이 단순한 소재주의적 관심 이상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 까닭이다. 여기서 작품 몇 개, 이왕이면 새로운 작가, 그리고 소위 「민중문학」과 무관(?)한 작품들을 살펴보자. 공선옥의 「목마른 계절」(1993)은 80년 광주에서 가장 멀리 온 시기의, 그러나 우리 일상 속에 가장 깊숙이 박힌 상처를 충격적으로 억척스럽게 드러낸다. 소설을 쓰며 사는 「내」가 술집종업원의 투신자살을 통해 광주의 아픔을 깨닫는 과정은 문학이 광주를 알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겠다. 역사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지난한 고통 끝에 확인하는 이 명제는 감동적이다. 다만 이때의 역사는 「현재형」이라는 언명에도 불구하고 소설미학적으로 보면 폭로―고발의 과거지향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는 광주 항쟁 당시 총에 맞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쳐온 자책감에 「저승의 삶」을 사는 여자와 그녀에게 공포를 느끼며 성적 폭행으로 보상받으려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광주를 다루는데 있어 문학적인 자유를 한껏 누렸고 그렇게 표현의 영역을 넓혔다. 그렇게 광주의 공포가 우리의 공포로 된다. 다만 그 끔찍하고 기괴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색깔 알록달록한 소녀주의를 벗지 못했다. 광주의 상처가 문학의 일반적인 상처로 환치된다. 그것을 더 넘어서야 역사와 문학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 것 아닐까. 이순원의 「얼굴」(1990)은 진압군으로 참가한 인물의 정신이상적 방황기이다. 비디오 테이프 등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을까 수십번씩 반복해보면서 총을 들고 자신을 겨누는 자신의 옛 얼굴. 하지만 진압군에 리얼리티가 없이, 그냥 죄책감만 있을 뿐이다. 위의 작품들은 문학의 입장에서 문학적으로 광주의 상처를 껴안으려는 치열한 고투의 산물들이다. 하지만 좀 아쉽기도 하다. 정치 사회적인 미완은 문학에 상처로 작용하고 문학은 그 상처를 완성의 매개 혹은 공(空)으로 삼지만 그것이 현실적 실패를 능가하는 현실적 성공의 질을 문학적으로 예감케 하려면 문학적 미래 전망행위를 포기해서는 안되는 까닭이다. 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