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시에서 도자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C사장은 얼마전 단돈 3천만원 때문에 담보로 잡혔던 7억원짜리 공장을 날려버렸다. 공장을 담보로 5억원을 은행에서 빌린 C사장은 3천만원짜리 어음의 교환이 돌아왔으나 잔고가 없어 부도 위기에 몰리자 같은 은행에 들어둔 9천만원짜리 적금을 해약해 지급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은행측은 채권확보를 이유로 담보 공장을 서둘러 경매에 부쳐버렸다. 경매에 넘어간 공장은 결국 필지별로 따로따로 경락(競落)돼 넘어가버렸다. 재인수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부도 노이로제」에 걸린 은행들의 극단적 채권확보 방식을 원망해보아도 이젠 소용없다. 「4월이 오면 좀 나아질까」. 한보 삼미 등 굵직한 그룹들의 잇단 부도로 금융기관 창구가 얼어붙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3월이 어서 가고 봄바람과 함께 「돈바람」이 불어왔으면 하는 희망을 안고 산다. 국내 굴지의 한 종합상사는 한보부도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 거래은행에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단돈 10원도 빌리지 못했다. 이 회사 자금부장은 『해외 전환사채(CB)를 발행할 것을 검토했지만 창피만 당할 것 같아 포기했다』며 『28일 사모(私募)CB 3백억원어치를 발행해 급한 불을 껐다』고 털어놓았다. 이 회사는 부도설에 시달리는 기업은 물론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 관계자는 『50대 안에 드는 한 그룹의 계열사는 최근 시설자금 1백20억원을 조달하려고 했으나 은행측이 「조금 두고보자」며 차일피일하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전했다. 대우는 최근 해외에서 7천만달러어치의 CB를 평소보다 0.05% 높은 금리를 주고 발행했으나 한국기업에 대한 신인도(信認度)가 크게 낮아져 4천5백만원어치밖에 팔지 못했다. 금융기관들의 「몸 사리기」 때문에 회사채 발행도 쉽지 않다.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중 일신석재 동신제약 등 최소한 8개 기업이 보증기관 또는 인수처를 구하지 못해 회사채 5백50억원어치를 발행하지 못했다. 자연히 보증수수료도 치솟았다. 총 발행가액의 0.3∼0.4%선에서 결정되던 수수료가 최근엔 0.6∼1%까지 올라갔다. 그것도 모자라 일부에선 이면(裏面)담보를 요구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종합금융의 한 관계자는 『자금시장 경색을 극적으로 반영하는 기업어음(CP)의 경우 현대 삼성 LG 대우 등 10대그룹내 「톱클래스」만이 제대로 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보와 거래하던 중소기업들도 요즘 채권단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심각한 경영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은 당초 한보의 진성어음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 운영자금을 대출해주겠다며 3천65억원의 채권확인서를 발급해주었으나 해당 은행들이 지금까지 대출해준 금액은 8백27억원(26.9%)에 불과하다. 재정경제원은 채권확인서를 받은 중소기업에 대해 채권금융단이 책임을 지고 운영자금을 빌려준 뒤 해당 은행에 대해서는 한보관련 대출액만큼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증권 중도환매를 통해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은행들이 잘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다. T사의 Y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자금조달비용을 줄이기 위해 금리나 자금시장 동향을 살펴가며 조달규모와 시기를 적절히 조절했으나 요즘은 금리예측도 불가능하고 자금시장 상황이 급격히 변화하기 때문에 미리 자금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20년간 자금담당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예측불허인 적은 없었다』 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韓基允(한기윤)경제조사부장은 『최근 한보 수사과정에서 담보를 제대로 잡지 않고 대출한 금융기관 관계자들에 대해 업무상 배임 운운하니까 중소기업이 자금지원을 받을 길은 더욱 멀어졌다』고 말했다. 〈정경준·천광암·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