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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만능컴 애물컴]늦깎이는 괴롭다

입력 | 1996-12-30 20:20:00


「洪錫珉기자」 정보통신의 발전을 이야기할 땐 「혁명」이란 단어를 쓴다. 컴퓨터가 이렇게 빨리 우리 생활에 가깝게 다가올 줄 누가 알았을까. 혁명에선 영웅도 나오지만 적응 못하는 층도 반드시 생기게 마련. 이 점에선 정보통신혁명도 마찬가지다. 자의건 타의건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뒤늦게 깨달은 「늦깎이」들은 괴롭다. 지난해 말 모기업체에 입사한 회사원 L씨(31).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함께 들어온 여자 입사 동기에 비하면 무려 7년이나 늦게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직장 생활에 대해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은데다 장교로 군복무를 마쳐 다른 사람을 이끌어나가는 데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실무 부서에 배치된 후 L씨에게 부닥친 가장 큰 장벽은 「나이 차」가 아니었다. 바로 컴퓨터였다. 사회는 어느새 저만치 앞서 나가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사내 업무가 전산화돼 컴퓨터를 모르면 사소한 문서 한장 작성하기도 어려웠다. 최근에 대학을 나온 다른 동기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요즘 대학에선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리포트만 받는다고 했다. 게다가 PC통신은 기본이고 인터넷을 즐기는 네티즌도 많다고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모르면 이들과 대화조차 힘들었다. 「헛 살았나」하는 탄식도 잠시, L씨는 눈물을 머금고 타자 연습부터 시작했다. 동기들과 비슷한 수준에 오르기까지 L씨가 겪은 마음고생 몸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내 전산화가 되면서 가장 큰 혼란을 겪는 계층은 30대 후반 이상의 중간관리층. 문서 작성은 하급 직원을 시켜 타자기를 두드리게 하고 자신은 결재만 담당하던 「좋은 시절」은 끝났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컴퓨터라는 게 없었다」고 변명만 늘어놓을 수도 없다. 사무자동화(OA) 바람이 불면서 인사 시스템도 많이 바뀌었다. 연공서열에 따라 자동으로 승진하던 시대는 가고 이젠 완전 무한 경쟁체제로 돌입했다. 어학과 함께 컴퓨터도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컴퓨터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안고 집에 돌아가도 고통은 줄지 않는다. 올해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도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꾸를 못해줬다간 「컴맹 아빠」로 찍히기 십상이다. 신문을 펼쳐도, TV를 켜도 온통 컴퓨터 인터넷 얘기뿐이다. 「언제 이렇게 바뀌었을까」하고 탄식만 하고 있을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격언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는 광속(光速)의 정보통신시대, 늦은 세월을 되돌려 보려는 늦깎이들의 노력은 여전히 눈물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