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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침 새지평]「탈북 드라마」를 보면서

입력 | 1996-12-10 20:24:00


아버님. 金慶鎬(김경호)씨 일가족이 먼 장정 끝에 드디어 남한 땅을 밟았어요. 아버님이 그 장면을 보셨다면 항상 그러셨듯이 눈물을 하염없이 훔치셨을 거예요. 저도 모르게 고이는 눈물을 보고 아버님 손자가 물어와요. 『아빠, 왜 울어』 아버님 대신 제가 울고 있어요. 그렇게 정정하시던 아버님이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저로서는 너무도 안타깝고 후회스러웠어요. 아버님이 왜 그렇게 건강에 신경을 쓰고 조금이라도 더 사시려 했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죠. ▼못풀어 드린 아버님恨 돌아가시면서도 『난 10년은 더 살아』하고 스스로 다짐하셨던 아버지. 이북에 처자를 두고 월남해서 평생 그리워하며 사셨기에 그들을 못 보고는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거죠. 6.25때 국군이 북으로 밀고 올라가자 그들과 함께 평양까지 올라가셨다가 중공군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다시 남으로 내려와야 했던 아버지. 어떻게 그 분들을 못보고 쉽게 눈을 감으실 수 있겠어요. 자식된 도리로 어떻게든 그 분들을 만나게 해드려야 했는데 여기 저기 수소문해봐도 그 분들을 만날 길은, 아니 소식조차 들을 길이 없었어요. 아마도 제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거예요. 누구는 북한 땅에 직접 들어가 자기 딸도 구출하는데. 사업차 중국 땅을 왕래하는 제 친구는 그런 저를 보고 이렇게 탓했어요. 『자식이 돼가지고 아버님 한 하나 못 풀어드리느냐』 그러나 아버님이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은 몰랐어요. 북한이 개방되고 남북 관계가 해빙되면 곧 기회가 닥칠 줄 알았는데. 그러나 모두 핑계겠지요. 자기 삶에만 바빴던 못난 아들의. 지난 가을에 저는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갔다 왔어요. 행여 그 분들의 소식을 알면 아버님을 모시고 가려고 했던 계획은 수포가 되고 저혼자 가게 됐던 거죠. 아버님이 젊은 시절 지났다는 만주 땅을 지나 백두산 천지로 올라갔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어요. 하늘 위의 바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물은 깊고 넓고 푸르렀으며 주위에 떠도는 청정한 기운은 몸으로 직접 느껴질 정도였어요. 아마 태초에 가장 먼저 생명체가 탄생했다면 바로 이곳에서였을 거예요. 그 강한 기운 속에는 저절로 생명이 튀어나와 함께 어울려 춤출 것만 같았으니까요. 우리 민족 내부에 있는 강한 자긍심도 이 천지의 기운에서 비롯됐을 거예요. 우리는 태초의 생명체에서 직접 뻗어나온 가장 강하고 활기차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기운을 갖고 있는 민족인 거죠. 재중국동포들을 만나면서는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들은 자신의 핏줄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다른 어떤 민족보다 뛰어나고 열심히 살려는 의지를 볼 수 있었어요. ▼민족의 고통 언제까지 타민족 장사치들이 그냥 멀뚱히 물건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면, 우리 조선족 상인들은 뛰어다니면서 적극적으로 팔고 있었어요. 그런 악착같음 속에서 강한 생명의 기운이, 우수한 민족의 정기가 느껴졌어요. 그런 강한 생명의 의지가 때로는 모국의 사기꾼들에게 잘못 걸려 좌절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앞서나가는 삶을 획득하리라 확신했어요. 아버님. 김경호씨 가족을 보면서 아버님의 한을 못 풀어드린 것이 못내 안타깝지만 아버님의 고통이, 우리 민족의 이 고통이 고통으로만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있듯이 이 아픔은 우리 민족의 성숙으로 이어질 거예요. 아버님. 부디 영혼으로나마 저희를 지켜봐 주세요. 아버님에 못지않은 자손으로 거듭나면서 이 민족의 빛을 이어가는 자손들의 활약을. 김 정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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