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5시반경 김경호씨(61)가 부인 최현실씨(57)와 차남 김성철씨(26)의 부축을 받으며 대한항공 17번 출구 램프 끝쪽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몸이 불편한 김씨는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출구쪽으로 걸어나왔다. 그 발걸음은 북한을 탈출한 뒤 광활한 중국대륙을 횡단, 한국에 오기까지의 힘겨운 대장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했다. 『반갑습네다』 램프를 빠져나와 김씨의 부인 최씨가 가족을 대표해 첫 소감을 밝혔다. 처음에는 김씨가 말을 하려 했으나 힘에 벅찬 듯 최씨에게 손짓으로 소감을 대신하게 했다. 하지만 김씨의 표정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려왔는지를 숨기지 못했다. 얼굴 가득 주체할 수 없는 기쁜 표정이 흘러 넘쳤다. 올리지도 못하는 두 팔을 애써 들어 흔들 때는 천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기쁩네다. 여러분께서 받아주셔서 정말 기쁩네다』 장남 금철씨(30)도 남쪽땅을 밟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차녀 명실씨(36)의 딸 충심이(3)와 삼녀 명숙씨(34)의 딸 봄이(5)는 홍콩에서 똑같이 마련한 산뜻한 빨간색 잠바를 입었고 명실씨의 아들 충진이(6)와 금철씨의 아들 금혁이(3)도 똑같은 파란색 잠바를 입고 귀엽게 손을 흔들었다. 검은색 가죽잠바를 입은 명숙씨의 아들 현철이(9)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무뚝뚝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입국장안에 들어와 있던 경호씨의 형 경태씨(70)와 현실씨의 작은 아버지 최전도씨(77) 등 양가 가족 7명이 앞으로 나와 경호씨 가족을 맞았다. 경호씨 앞으로 바짝 다가선 경태씨. 몇초간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50여년만의 상봉. 세월이 가둔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경태씨가 드디어 『니가 경호 맞나. 정말 경호가…』라고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얼싸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 조카 현실씨를 맞는 작은 아버지 최전도씨도 최근 받은 심장병수술 때문인지 기쁨을 애써 감추려 했지만 흘러내리는 눈물만은 감출 수 없었다. 이들은 정부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오후 5시50분경 의전실을 통해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귀빈주차장에서 대기중이던 25인승 승합차를 타고 공항을 떠나는 이들은 입국장에서보다는 훨씬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宋平仁·夫亨權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