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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화여대 120주년

Posted May. 30, 200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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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인습에 짓눌리고 억압당했던 여성들의 바람은 다음 생에서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10년 전 편찬된 이화여대 110년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미국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은 조선의 소녀들이 다음 생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사람답게 살려면 여성만의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배꽃 만발한 언덕 위의 이화()학당에 첫 학생이 찾아온 날이 1886년 5월 31일이다.

첫 이화여대생과 이화에서 학업을 마친 초기의 학생은 이화여대의 양면성처럼 상징적이다. 누군가의 무엇으로 더 알려진 여성과, 스스로 유명해지는 여성을 동시에 키웠다는 의미에서다. 첫 입학생인 김 부인은 영어를 배워 통역이 되고 싶어 했지만 석 달 만에 그만둬야 했던 고관의 소실이었다. 두 번째로 온 꽃님이는 가난한 어머니가 맡겨 첫 영구학생(permanent pupil)이 됐다. 이듬해 입학한 김점동(박에스터)은 뒷날 첫 여의사로 활동했다.

국내 종합대학 인가 1호인 만큼 첫 여성 박사(김활란), 변호사(이태영), 국무총리(한명숙), 헌법재판관(전효숙) 등 무수한 1호가 이화에서 나왔다. 역대 여성장관 25명 중 12명, 17대 여성의원 40명 중 13명이 이화 출신이다. 이화의 사위는 더 유명하다. 대통령부인이 둘 나왔고(손명순이희호), 차기 대선주자(가나다순)로 주목되는 고건, 김근태, 손학규, 이명박 씨의 부인도 이화 졸업생이다. 세계 최대의 여성대학답게 전문직여성부터 억척어멈까지, 복부인부터 운동권까지, 극우부터 극좌까지 이화여대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대학도 드물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어떤 나라가 여성이 있는 나라냐, 아니냐로 선진국인지 간단히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이화여대는 첫 여성학 강좌를 열고 여성운동을 이끌며 호주제 폐지 등을 주도해 여성이 있는 나라를 이끌었다. 이화여대 나온 페미을 남성 최대의 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프런티어 이화가 또 어떤 전통의 틀을 깨고 발전할지 지켜보자.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