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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굴비상자

Posted August. 31, 2004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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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봉투 상자 가방은 본래의 뜻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뇌물을 상징하는 메타포인 것이다. 실명제와 함께 뇌물의 단위가 커지면서 봉투는 사라지고 상자와 가방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초장에는 케이크 상자에 몇십만몇백만원대의 수표를 넣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차츰 라면 또는 사과상자에 이어 각종 가방에 억대 현금을 넣는 단계로 발전했다. 뇌물죄로 처벌받은 공무원들로부터 추징되는 돈이 한 해 평균 100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적발되지 않은 뇌물의 액수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각종 수사 결과에 따르면 쇼핑백은 3000만5000만원, 007가방은 1억원가량을 넣을 수 있다. 사과상자는 2억3억원, 골프가방은 3억4억원이 들어간다. 대형 여행용 가방에는 4억5억원을 담을 수 있다. 뇌물에 익숙한 이는 상자와 가방만 봐도 얼마가 담겼는지를 단박에 안다고 한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 때 한 재벌 기업은 2.5t 탑차에는 현금 150억원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다른 재벌 기업은 112억원어치의 채권을 월간지 크기로 포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바 있다.

안상수 인천시장이 해외 출장 중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여동생 집으로 전달된 굴비 2상자 안에 굴비 대신 현금 2억원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시장의 여동생 집으로 뇌물을 보낸 용의주도함, 추석을 앞두고 제수용품인 것처럼 굴비상자를 보낸 시의성, 그리고 누가 보냈는지를 표시하지 않은 익명성 등 뇌물의 3박자를 골고루 갖췄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굴비상자를 뇌물 전달 용기()로 사용한 독창성이다.

지금은 귀한 생선이 됐지만 굴비는 과거 자린고비의 상징이었다. 조선 영조 때 충북 음성에 살던 조륵이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가락 떠먹고 굴비 한 번 올려다보곤 했다는 절인 굴비 일화가 자린고비의 어원 중 하나다. 찬밥을 물에 말아 굴비 한 토막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시절도 있었던 서민의 생선이었으나 어쩌다 2억짜리 생선이 된 것이다. 굴비야 무슨 죄가 있으랴. 하고 많은 나라 중에서 한국 인근에서 잡혀 그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뿐이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