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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21세기 도시 산책자의 사유법

서울과 파리… 21세기 도시 산책자의 사유법

Posted October. 02, 2021 08:17,   

Updated October. 02, 202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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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돈이 소설가가 아닌 도시 산책자로 독자들을 만난다. 서울과 프랑스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을 풀어낸 글 23편을 담았다. 문학가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의 거리는 대체로 아름다울 것 같지만 오산이다. 2018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할 만큼 건축·미술에도 조예가 있는 저자답게 도시의 건축물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내는 방식이 날카롭다.

 책은 박태원(1909∼1986)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의 21세기 버전 에세이를 표방한다. ‘소설가…’는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소설가 구보씨가 서울의 거리 곳곳을 쏘다니며 떠올린 단상들로 이어진다. 저자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도시 산책자를 군중 속의 개인으로 읽어내며 제시했던 개념 플라뇌르(Fl^aneur·한가롭게 거니는 사람)를 연상하기도 한다.

 신간의 무대는 서울과 파리의 아름다운 산책길이 아니다. 키 큰 빌딩들로 가득 메워진 광화문 한복판과 파리 콩코르드 광장이 등장한다. 고요한 산책이 가져다주는 목가적인 사유와는 다른, 도시를 걸을 때 동반되는 일종의 산만함이 독특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디타워, 르메이에르, 그랑서울 등 종로와 광화문의 고층 건물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서울의 중심지이자 상징과도 같은 곳이 어느새 전국의 프랜차이즈 종합 센터로 변모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피맛골 같은 서울의 옛 골목은 여전히 북적이지만 이 동네만의 독특한 문화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과거의 방식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포섭된 국내의 현실을 사색하기에는 도시 산책이 제격이다.

 저자는 도시를 언어에 비유한다. 언어도 일정 수준 이상 배워야 반어, 아이러니, 유머, 농담, 현학적인 표현부터 줄임말이 가능해진다. 도시 역시 가로지르고 표류하고 발견하고 점거하고 걸어야 비로소 제대로 감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동네를 정말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빌딩 없는 산책길이 없어 집에만 머물러왔던 도시생활자라면 이 책은 바로 집 앞에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산책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