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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전세기로 모셔오고 봉송땐 차량 100여대 ‘호위’

성화, 전세기로 모셔오고 봉송땐 차량 100여대 ‘호위’

Posted October. 25, 2017 08:04,   

Updated October. 25, 201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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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성화(聖火)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최종 점화자다.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최종 점화자의 존재는 막판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내년 2월 평창에 불을 밝힐 최종 점화자의 존재도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물론 그저 궁금해하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상상의 나래를 펼 자유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역대 올림픽 사례 또한 좋은 참고 자료다.

○ 섬마을 선생님이 불붙인 올림픽 성화

 역대 올림픽에서 최종 점화 단골 손님은 주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다. 평창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의 최종 점화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에 불을 붙인 ‘20세기 가장 위대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알리는 파킨슨병 투병 중에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떨리는 손으로 성화대에 불을 붙여 전 세계인의 감동을 자아냈다.

 역대 최종 점화자 중에서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인물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의 파보 누르미다. 육상 선수인 누르미는 3개 대회에서 총 금메달 9개, 은메달 2개를 땄다.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때는 프랑스 축구의 전설 미셸 플라티니,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황제 웨인 그레츠키, 미국프로농구(NBA)의 스티브 내시 등이 최종 점화에 나섰다. 세 선수 모두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물론 올림피언만이 기회를 얻는 건 아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최종 점화자 사카이 요시노리가 대표적이다. 일본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1945년 8월 6일 태어난 사카이는 육상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적이 없음에도 평화와 희망의 상징으로 성화를 붙였다.

 일반인에게 영광의 기회가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섬마을 선생님 정선만, 무용학교에 다니던 여학생 손미정이 마라톤 선수 김원탁과 합동 점화했다. 같은 해 출범한 노태우 정부의 ‘보통 사람’ 슬로건과 일맥상통했다는 평가다. 1952년 오슬로 겨울올림픽은 노르웨이의 북극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의 손자 에이길 난센이 점화를 했다.

○ 불화살로 밝힌 성화대

 최종 점화자만큼이나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점화 방식이다. 그중에서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장애인 양궁 선수 안토니오 레볼로가 불붙은 화살을 쏘아 성화대에 불을 붙인 건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실제로 화살은 성화대를 비켜갔지만 자동점화장치 덕에 스치는 불길로도 점화가 가능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중국의 체조 영웅 리닝이 몸에 로프를 매단 채 공중유영으로 점화를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최종 점화자 3명이 엘리베이터 장치를 타고 성화대에 올라가 불을 붙였다. 점화와 동시에 성화대에 있던 비둘기가 불타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아찔한 장면은 1956년 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때도 등장했다. 스케이트를 탄 채 성화대로 향하던 이탈리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귀도 카롤리가 빙판 위 TV케이블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것. 다행히 성화는 꺼지지 않았지만 평창 올림픽에선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강홍구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