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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단속반 뜨자 좀 봐달라 읍소 X팔, 잡아가 강짜도 (일

짝퉁 단속반 뜨자 좀 봐달라 읍소 X팔, 잡아가 강짜도 (일

Posted February. 26, 2013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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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노점상)이 우리가 온 걸 눈치 챈 거 같은데요. 그럼 바로 칩시다. 양쪽에서부터 몰고 가죠.

21일 밤 12시, 서울 동대문시장 인근에서 단속 동선을 상의하던 서울시와 중구의 짝퉁(위조상품) 노점 단속반 곁을 붉은색 점퍼를 입은 청년이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이 청년은 근처에 주차한 차량으로 짝퉁 물건을 가지러 온 노점상이 확실했다. 신분이 노출됐다고 판단한 단속반은 곧바로 2개조로 나눠 노점상 골목으로 달려갔다.

세계 무역규모 8위이면서도 여전히 짝퉁의 천국으로 불리는 한국. 짝퉁과의 전쟁에 나선 단속반을 쫓아가 봤다.

뛰는 단속반 위에 나는 노점상

단속반의 첫 타깃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주변 노점. 서울시 김현기 주무관 팀과 중구 정정기 주무관 팀은 각각 노점 양 끝에서부터 단속을 시작했다. 김 주무관이 들어간 노점상 골목에선 짝퉁이 아닌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샤넬 루이뷔통 프라다 같은 유명 브랜드의 지갑과 핸드백부터 루이뷔통 구치의 속옷처럼 한눈에 보기에도 가짜인 상품까지 다양했다. 코오롱스포츠 등산복 같은 국내 브랜드 제품도 있었다.

노점상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 좀 봐 달라는 읍소형부터 난 그냥 구경하는 손님일 뿐이라는 오리발형, 팔, 잡아가려면 잡아가 봐라고 위협하는 막무가내형까지, 노점상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뺏기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물품을 압수하고 판매자를 찾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틈을 타 주변의 다른 노점상들은 물건을 챙겨 모두 도망갔다.

동대문 짝퉁 노점의 또 다른 본거지인 라모도 쇼핑몰 앞쪽으로 단속반이 이동했지만 이미 단속 소식이 퍼진 탓인지 판매대의 물건들을 치운 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서울시 김 주무관이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불법 노점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소리치자 어디선가 한 남성이 등장했다. 이 노점 골목의 총무라는 그가 잘못했다. 협조하겠다고 말한 뒤 판매자들을 부르자 주변에서 조심스레 단속반을 지켜보던 노점상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매대 앞에 서기 시작했다. 갑자기 순순히 단속에 응하는 것이 의아했다. 단속반원인 티파(TIPA무역 관련 지식재산권보호협회) 소속 신모 팀장은 협조하는 척하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빨리 단속반을 보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단속반이 모든 노점을 단속할 수는 없으니 일단 적발된 노점들만이라도 빨리 협조해 단속 규모와 시간을 줄이자는 것. 단속반이 빨리 떠나면 빨리 장사를 재개할 수 있다.

이날 두 팀이 단속한 노점상은 모두 10명. 압수물품은 1010점이었다. 이들은 상표법 위반으로 입건돼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검찰에 송치된다. 압수물품은 모두 폐기 처분된다.

동대문 노점 86%가 짝퉁

서울시가 상표법 단속반을 체계적으로 운영한 것은 석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30일 상표법 위반을 단속하는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으로 서울시와 중구 공무원이 1명씩 지정되고 난 뒤부터 실효성 있는 단속을 시작했다. 서울시 김 주무관은 특사경으로 지정받기 전에는 단속에 나가더라도 물건을 압수할 수 없었고 노점상도 직접 조사할 권한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단속반과 함께 둘러본 한국의 짝퉁 판매 실상은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프랑스 브랜드 루이뷔통이 지난해 7, 8월 서울의 4대 시장(남대문 동대문 이태원 명동)의 노점을 조사한 결과 동대문시장 543개 노점 중 86%인 469곳이 짝퉁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태원 57%, 명동 35% 남대문 25%의 노점에서도 짝퉁이 발견됐다. 지난해 8월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이 자료를 들고 서울시와 중구를 방문해 짝퉁을 적극적으로 단속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노점상에 비해 단속 인력은 터무니없이 적다. 서울시에서 단속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모두 2명뿐.

주한유럽상공회의소가 부족한 단속 보조인력 4명과 차량을 지원하고 있을 정도다. 이날 단속에서도 노점상들은 단속반이 보는 앞에서 물건을 빼돌리고 도망치기도 했지만 단속반은 인력 부족으로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 특사경의 역할이 상표법 단속에만 한정돼있어 강하게 저항하는 노점상들을 제압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노점상들이 단속돼도 벌금 100만200만 원의 처벌에 그친다. 동대문 노점에선 짝퉁 지갑이 평균 15만 원, 가방은 20만30만 원에 팔린다. 짝퉁 원가는 판매가의 1020% 수준이다. 가로세로 1.5m인 노점 한 곳의 하루 매출은 100만300만 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하루 장사만 해도 벌금을 벌 수 있다. 이 때문에 노점상 상당수는 상표법 위반 전과가 4, 5개라는 게 단속반의 설명이다. 중구 정 주무관은 벤츠를 몰고 다니는 노점상을 붙잡았던 적도 있다며 판매자로 잡혀오는 20, 30대 남성 상당수는 이들에게 고용된 바지사장이라고 말했다.



박진우 p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