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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계 은근슬쩍 베끼기 제동 걸릴까 (일)

패션업계 은근슬쩍 베끼기 제동 걸릴까 (일)

Posted October. 24, 20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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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FnC코오롱)이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개미플러스를 상대로 디자인침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

FnC코오롱은 자사의 핸드백 브랜드 쿠론의 핵심 디자인을 개미플러스가 운영하는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 에잇세컨즈가 도용해 심각한 피해를 입어 이르면 24일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쿠론의 대표 모델인 스테파니백과 에잇세컨즈 매장에서 파는 핸드백의 사이즈나 스트랩(끈) 위치 등이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 패션 대기업 간 디자인 분쟁이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소송의 대상이 된 핸드백이 두 기업 모두 효자 브랜드여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디자인 침해 관행 제동 걸리나

쿠론은 주요 점포인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에서 상반기(16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0% 증가하는 등 국내 핸드백 브랜드 중 가장 성장세가 뚜렷하다. 전체 상반기 매출은 170억 원으로 지난 한 해 매출 12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쿠론의 핸드백이 큰 인기를 끌자 카피(copy모방) 제품이 급증했고, 이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FnC코오롱 측은 6개 업체에 디자인 침해를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대부분은 전량 수거해 소각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지만 에잇세컨즈는 미온적으로 대처해 소송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패션업계에서 디자인 카피는 관행처럼 여겨졌다. 간혹 분쟁이 일어나도 업체끼리 합의해 흐지부지된 사례가 많았다. 전광출 변리사는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카피 관행이 심각해 그 누구도 디자인 침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약 3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류산업협회가 집계한 디자인 관련 분쟁 추이는 2010년 41건에서 2011년 171건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07건이었다. 디자인 분쟁 증가에는 유럽연합(EU), 미국 등과 잇따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도 한몫 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 업체가 국내 디자인 침해 사례를 지적하거나, 반대로 한국 업체가 해외에서 카피를 당하면서 디자인권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값싼 제품 선호에 카피 여전

이 같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패션업계에서 카피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최근 들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SPA 브랜드와 저가 브랜드숍이 늘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빠른 시간 내에 트렌드를 반영하려다 보니 외부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에잇세컨즈는 2월 론칭 1주일 만에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의 양말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회사 측은 수많은 상품을 최대한 빨리 기획해 생산해야 하는데 사업 초기에 유사 디자인 검증 프로세스를 놓쳤다고 사과했다.

불황으로 지갑을 닫은 소비자들이 저가 상품을 선호하면서 화장품, 생활용품 업계에도 카피가 늘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이 특정 브랜드 제품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끼는 사례도 종종 있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A사는 자사의 수분젤 패키지를 한 대형마트에서 모방해 버젓이 판매하자 내용증명을 보내 항의했다. 이 사건은 해당 마트가 디자인을 일부 수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분쟁에 일일이 대응하다 핵심 역량을 키울 기회를 뺏기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론칭한 핸드백 브랜드 소프트백은 주력 제품 아치 아나콘다를 내놓은 지 3개월 만에 카피 제품이 인터넷에서 정가의 2530% 가격에 팔려 큰 피해를 입었다. 김형찬 소프트앤코 대표는 형사 고발을 하기 위해 문제의 쇼핑몰 업체와 공장을 적발하는데 전체 인력의 절반가량을 배치했다며 소송비용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디자인 관련 분쟁은 피해 업체가 강경 대응해도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재길 한국의류산업협회 지적재산권보호센터장은 디자인 분쟁은 디자인권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아 일반 소송처럼 명확한 결과가 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현진 염희진 bright@donga.com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