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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라이스 회고록의 남북미

Posted November. 03, 201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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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끔 반미() 성향을 드러내면서도 재임 중 한미 정상회담을 8번이나 가졌다. 그 가운데 가장 민망한 장면은 2007년 9월 호주 시드니 정상회담 직후 가진 언론 회동이었다.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625전쟁 종전 선언을 끌어내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종전 선언이 가시권에 왔다는 말을 하기를 바랐다.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신통한 발언이 나오지 않자 노 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종전 선언에 대한 언급이 없다. 국민이 듣고 싶어 한다고 따졌다. 부시 대통령은 종전 선언은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한 뒤 생각할 문제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좀 더 명확하게 말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고 부시는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말하느냐고 받았다. 둘 다 웃고 있었지만 정상 간에 외교적 언쟁이 공개적으로 오간 셈이다. 종전 선언을 평화 협정으로 인식하던 미국으로선 종전 선언을 평화체제 협상 개시를 위한 정치적 수사()로 이용하자는 한국 정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자리에 있던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비망록에서 노 전 대통령의 괴짜 같은(erratic) 면모를 보여준 사건이다. 그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기이한지 모르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2005년 11월 경주로 부시 대통령을 초대한 노 전 대통령은 방코델타아시아에 묶인 북한의 불법 자금 2500만 달러를 풀어주라며 1시간 넘게 언쟁했다. 옆에서 좌불안석이었던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으로 꼽았다.

노무현 정권 시절 북한 문제는 한미 갈등의 주요 원인인 동시에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까지 분열시켰다. 대북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과 협상을 진행한 라이스는 결국 부시 대통령과의 직거래를 선택했다. 의사 결정은 빨라졌지만 북한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미 양국이 정권교체를 이룬 뒤 빈틈없는 정책 공조를 하고 있으나 북핵 문제는 여전히 꼬여 있다. 남북미() 간 대화가 20년이 흘렀지만 북핵 폐기는 조금도 진전되지 않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 태 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