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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단순복원 아닌 세계동맹으로 진화해야

한미관계 단순복원 아닌 세계동맹으로 진화해야

Posted December. 31, 2007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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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통적 한미동맹의 복원을 많이 얘기하는데, 새로운 한미관계가 단순히 과거의 황금시대로 회귀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합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되 한반도를 넘어선 세계적 차원의 이슈들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 나가야 합니다.(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

한국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후 미국 워싱턴에서는 글로벌 플레이어(Global Player)로서의 한국이 되어 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5년간 깊은 상처를 받은 한미동맹이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치유될 것이란 기대와 더불어 이제는 한미관계를 북한, 한반도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세계 차원의 동맹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지고 있다.

북한안보 이슈에만 매달리지 않는 동맹을=워싱턴의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28일 미 행정부는 수년 전부터 한미관계를 세계적 차원의 동맹으로 확장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한국 정부에 전해 왔으나 한국은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하지만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워싱턴에선 한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파트너로 더 큰 역할을 해 줄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한미동맹은 세계적인 차원의 동맹이 돼야 한다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평화 유지, 팔레스타인과 중동 문제, 기후 변화, 질병 퇴치 등 세계무대에서 함께할 일이 많아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전문가는 한국은 항상 대등한 관계를 원한다고 얘기하고 미국도 이를 환영한다며 하지만 한국이 국력에 걸맞은 역할을 국제무대에서 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집안 일(북한, 한반도 현안)만 챙기려 할 뿐 동네 일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제안한 민주주의 공동체(Community of Democracy) 구상에 호응해 한국에서 한 차례 회의가 열린 적이 있으나 이후 국제 현안이 테러와의 전쟁,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등으로 옮겨 가면서 한국의 태도는 싸늘하게 바뀌었다는 것. 한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미국 법인의 한 관계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엔 여전히 북한 문제에 찌들어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는 반면 일본은 물론 중국도 제3세계에 많은 원조를 하며 국제적 위상을 높여 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반자가 절실히 필요한 미 행정부=집권 중반까지 힘의 외교(hard power)를 구사해 온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힘의 외교가 가진 한계를 깨닫고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소프트파워를 결합하는 행보를 본격화하며 우방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국무부 분쟁지역국 대표인 존 헙스트 재건안전담당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분쟁지역 재건, 저개발국 지원이 미국만의 과제가 아니라는 판단하에 최근 한국 일본 호주 등에도 지원 확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전략대화에선 북한을 연결고리로 한 50년 동맹관계의 패러다임을 넘어 두 나라가 장기적으로 무엇을 같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논의됐다. 10월 한미 차관급 회담의 첫 의제도 미얀마의 민주주의 위기 해결 방안 등 국제 이슈였다.

미일동맹의 경우 클린턴-하시모토 선언으로 불리는 1994년 신 미일방위구상을 통해 패러다임을 동아시아 전체로 넓히고, 국제 이슈에 공동 대처한다는 지평 확대에 포인트를 두기 시작했다.

물론 이를 위해선 미국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스트로브 전 한국과장은 우방들이 파트너로 참여해 주길 원한다면 미국 스스로도 이라크전쟁 같은 재앙적 결정을 하지 말고 동맹국들이 흔쾌히 동참할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지()사고 극복해야=2005년 한미 의원외교를 강화하겠다며 워싱턴을 방문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지한파 정치인으로 꼽히는 찰스 랭걸(민주당현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 하원의원을 면담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 의원들이 미국을 돕기 위해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다고 강조하자 랭걸 의원은 한국이 필요해서 보낸 것 아니냐고 대꾸했다. 노 대통령이 파병 목적을 전후 개발 참여와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고 스스로 설명하는 등 현실적 이익을 내세운 점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국무부의 고위 관리(현재는 퇴직)는 한국 정부가 국민에게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실제로 파병은 한국 정부가 원하는 효과를 냈다며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 등 대의명분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면 더 빛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현실적 이익이 아닌 무형의 가치에 투자하는 걸 잘 받아들이지 않고 국제 문제를 우리 중심으로 해석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한국 외교에는) 큰 벽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위상이 경제적 부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한 전직 외교관은 한국이 모든 분야의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며 평화중재 하면 노르웨이, 군축 하면 스웨덴이 떠오르듯 한국도 특화된 분야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 국익을 바탕에 깔되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가치 중심의 외교를 지향하면서 명분을 쌓아 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국내 결식아동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저개발국을 돕는 일도 역시 중요하다. 돈만 내고 말 게 아니라 우리 젊은이가 현장에서 현지인과 함께 땀 흘리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여론은 왜 남의 나라에서 우리 젊은이가 피를 흘리느냐는 게 강하다. 625전쟁 때 미군과 유엔군이 피 흘린 것은 괜찮고 우리가 남을 위해 피 흘리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전환이 필요하다.



이기홍 김승련 sechepa@donga.com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