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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갇힌 부동부자들

Posted June. 29, 2007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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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2년 전 퇴직한 김모(55) 씨는 서울 강남지역에 시가 10억 원이 넘는 번듯한 아파트를 갖고 있다. 직장 초년() 시절 전세로 시작해 그 후 받은 월급과 스톡옵션, 퇴직금 등을 틈틈이 모아 집을 사고 늘리는 데 투자한 결과다.

하지만 이 아파트 외에 그가 보유한 금융 자산은 고작 2000만 원 남짓. 별도의 고정 수입 없이 갖고 있는 예금을 고스란히 생활비에 써 온 김 씨는 대학생 남매인 자녀의 결혼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미국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land(house) rich, cash poor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집이나 땅 등 부동산 자산은 많지만 처분이 쉽지 않고, 당장의 가용() 자산이 많지 않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가난한 부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빈털터리 부동산 부자들

강남에서 전세로 살던 이모(36여) 씨는 올해 초 친정과 가까운 곳에 시가 5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자신과 남편이 갖고 있던 금융자산을 탈탈 털고, 매입한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 2억 원도 받았다.

주변에서는 결국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남편의 월수입은 250만 원이 안 되는데 매월 대출 원금과 이자로만 200만 원 가까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현금 없는 부자들은 한국 가계의 새로운 트렌드이기도 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현재 한국 전체 가구의 가구당 평균 총자산 2억8112만 원 중 76.9%가 부동산이었다. 이 연구원의 이주량 박사는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 비율이 절반 이하인 것과 비교하면 무척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집값은 올랐지만 소득은 안 늘어

가난한 부자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몇 년간 집값이나 땅값이 급등했지만 오랜 경기 침체로 실제 소득은 그다지 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국민총소득(GNI)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2.2% 증가에 그쳤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늘어난 것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가난한 부자들의 생활수준은 높은 물가 때문에 더 낮아지고 있다.

강북에서 살다가 얼마 전 강남으로 이사 온 이모(37) 씨는 아들의 어린이집 비용이 강북보다 월 50만 원이나 더 든다는 사실 때문에 숨이 막혔다.

이 씨는 자녀 교육 문제로 급하게 이사 온 이웃 중에는 집에 제대로 된 가구나 가전제품을 들이지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