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도심의 죽봉

Posted November. 10, 2006 07:07,   

日本語

8일 평화시위 관련 세미나장.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토론 중 조직적으로 무장한 시위는 없고 폭력시위는 우발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이정화 전의경부모모임 대표가 질문했다. 서울시내에 대나무 밭이 없잖아요. 그런데 미리 준비하지 않은 죽창이나 쇠파이프는 어디서 나오죠? 김 총장은 즉답을 못한 채 난감해했다. 작년 말 서울 농민시위 때도 죽봉이 등장했는데 시위대는 주변 공사장에서 주워 왔다고 했다. 죽봉 10여 개짜리 꾸러미들이 시위 현장으로 반입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은 조작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는 서울에서 죽봉과 쇠파이프를 휘둘렀지만 홍콩과 미국 워싱턴의 원정시위 때는 어림없었다. 그 대신 피켓과 사물놀이 용품을 들었다. 시위 양상은 경찰, 정부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시민사회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제 세미나에서 벤 브라운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경찰만으로는 시위대의 불법 폭력행위를 통제하기 어렵다면서 시민사회가 협조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구성한 평화시위 민관위원회가 출범한 지 열 달이 됐다. 당초 4월에 평화시위 사회협약을 내놓겠다고 했으나 계속 미뤄져 12월 체결로 목표를 수정했다고 한다. 정부와 사회종교노동단체 등이 서명하고 약속을 지키면 내년엔 선진 시위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죽봉과 쇠파이프야말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요즘 열린우리당 사람들의 후회 시리즈가 유행이지만, 사회운동가들도 죽봉 좋아하다가 국민에게 외면당했다고 후회할 날이 오지 않을지.

그제 오후엔 전국빈민연합 시위대가 서울역에서 회현동을 거쳐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했다. 이 바람에 30분간 차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회사원 김모 씨와 시위대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김 씨는 시위대 속으로 차를 몰아 4명을 친 뒤 다른 방향으로 가다가 시위대에 붙잡혀 폭행당했다. 잦은 도심 시위의 부산물이다. 도심 시위 스트레스를 참기 힘들어하는 시민이 늘어난다는 점을 시위 지도부가 가볍게 여겨도 될까.

홍 권 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