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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혁신 하지만 그이후 비전 뭔지

Posted September. 30, 200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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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국정실험이 1년 반째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로 대변되는 공직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공무원은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정부과천청사에 근무하는 한 과장급 공무원은 최근 사석에서 분권형 국정운영, 정부혁신 등 말은 좋은데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겠다. 한마디로 헷갈린다고 토로했다. 공직사회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은 워낙 보수적인 분위기 탓도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기존 권력질서의 해체에만 몰두하면서 새로운 질서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무성한 거대담론=분권 혁신 참여 자율 평등. 노무현 정부 핵심인사들이 강조하는 키워드들이다.

그 중에서도 분권과 정부혁신은 노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온 개혁의 수단이자 목표. 골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해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직사회에 민간기업 못지않은 경쟁체제를 도입하며 공직사회를 감시, 견인하기 위한 외부 전문가나 시민의 국정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정부 각 부처별 혁신담당관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혁신방안을 마련해 자율적 추진을 독려하고 있으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정책평가 내실화, 성과주의 인사시스템 구축, 회의운영방식 개선 등을 성과로 꼽았다.

그러나 상당수 공무원들은 여전히 분권과 혁신의 구체적인 내용을 머릿속에 담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목표와 행정의 현실이 따로 노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근무하는 한 정부부처 과장은 담론은 거대한 데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 위에서는 알아서들 잘 해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밑에서는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는 정부 혁신 워크숍에 참석해 봤는데 꼭 현실과 동떨어진 강의를 듣고 나온 기분만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부처에선 혁신 지상주의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 경제 부처 공무원은 혁신담당관실에서 1주일에 한번씩 숙제를 내준다. 최근에는 두툼한 영어 원서를 주며 독후감을 내라고 했다. 숙제를 하느라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옥상옥() 체제=노 대통령은 이해찬() 총리에게 일상적 국정운영을 위임하고, 분야별 책임장관제(팀제)를 도입했다. 또 12개 국정과제위원회로 하여금 장기적인 국가전략과제를 정립토록 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은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부터 구상했던, 크고 작은 국정개편 실험의 완결판이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실제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 도입 이후 청와대와 총리실의 정보 공유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업무 영역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총리 비서실의 한 간부는 현재로선 감()에 의해 일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책임장관제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사회관계 부처의 한 과장은 고도의 전문성과 판단력이 필요한 정책 입안과 수립은 실무진이, 결정은 장차관이 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부처간 조율 기능은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로도 충분한 데 공연히 옥상옥 체제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국정 어젠다를 제공하는 각종 위원회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각종 위원회가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큰 그림을 그리면 각 부처가 이를 토대로 정책을 수립해 집행하는 게 선진적인 국정운영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부처의 한 간부는 중요한 정책의 기본 골격이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서 거의 짜여져 내려오면 부처에서 거기에 맞춰 살이나 갖다 붙이는 식으로 정책이 양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부처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대통령의 힘을 받은 위원회들이 청사진을 발표해 처음에는 용을 그렸다가 몇 년 뒤에는 도마뱀이 되는 전례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용관 yongari@donh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