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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블랙홀

Posted July. 23, 200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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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시인 바이런, 넬슨 제독, 그리고 스티븐 호킹 박사. 공통점을 찾기 쉽지 않은 조합이다. 지난해 BBC 여론조사에서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장애인으로 뽑힌 인물들. 천재 물리학자 호킹 박사가 일등이었다. 호킹 박사의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컴퓨터에 의지하지 않고는 말 한마디 못하는 호킹 박사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블랙홀 이론은 더 위대해 보인다는 점 말이다.

과학적 발견이 섹스보다 좋지는 않겠지만 만족은 훨씬 오래간답니다. 호킹 박사가 2002년 회갑 기념으로 열린 케임브리지대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딱딱한 과학 분야에, 그것도 불편한 몸으로 매달리면서도 그의 유머감각은 빼어나다. 일본 강연에선 우주가 재붕괴한다는 얘기는 하지 말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나요 했고, 휠체어에서 떨어져 전신마취 없이 기관절제술을 받았을 때를 묘사하면서는 드릴 소리를 들으며 벽과 논쟁을 벌였는데 벽이 이겼다고 해서 듣는 이를 웃겼다.

이 유머감각은 엊그제 자신의 블랙홀 이론을 180도 뒤집는 논문을 발표하면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공상과학소설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블랙홀을 이용해 우주를 여행할 가능성은 없어졌어요. 30년 전 그는 블랙홀 연구사상 혁명적 성과로 평가됐던 이론을 발표했는데 이번에 그게 잘못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정보는 방출될 수 있다는 새 이론이다. 뭔가 알지 못할 일이 벌어졌을 때 앞뒤 생략하고 블랙홀에 빠져버렸다며 어물대는 보통사람들에겐 당최 이해하기 힘든 얘기지만, 세계적 석학이 내 이론이 틀렸다고 선언하는 모습은 유쾌한 충격이다.

21세 루게릭병 발병 전에는 삶이 지루했다는 호킹 박사다. 진단을 받고 나서야 세상엔 가치 있는 일 천지라는 걸 알고 현재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살아서 연구하면서 세상발전에 보탬이 되는 게 기쁘다는 열린 자세가 오늘의 호킹 박사를 만든 게 아닐까 싶다. 학계는 물론 집권층이나 시장터에서나 틈만 나면 사상전이 벌어지는 요즘, 우리는 언제쯤 내 이론이 틀렸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까.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