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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죽음..정치시련.. 비운의 세월

Posted August. 04, 200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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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수레바퀴는 이제 멈출 것인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현대가()는 형제들의 잇단 죽음과 정치적 악연 때문에 큰 충격에 빠져 있다.

한국경제 성장사는 바로 현대의 역사라는 자부심을 가진 정주영 패밀리는 고비 때마다 불행이 되풀이돼 안타까워하고 있다.

형제들의 잇단 죽음=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아들 가운데 사고로 숨지거나 자살한 사람은 3명에 이르는 데다 동생까지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이자 동아일보 기자였던 정신영()씨가 1962년 4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장 폐색증으로 타계한 것이 현대가에 찾아온 첫 불운의 그림자였다.

창업주는 유능하고 성실한 동생 신영씨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는데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그를 갑자기 잃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측근들은 기억한다.

뒤이어 창업주의 장남 정몽필() 인천제철 회장은 82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창업 동지 역할을 했던 장남의 죽음에 대해 창업주는 무척 애통해 했다. 90년엔 평소 지병을 앓던 4남 몽우()씨가 자살했다.

정치적 시련도 대를 이어=정치적인 시련도 이어졌다. 92년 창업주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실패하는 바람에 현대그룹은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엔 6남 정몽준() 의원이 대()를 이어 대선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 회장이 관할하는 현대그룹은 작년 9월 이후 5억달러 대북 비밀송금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치적 사건에 휩쓸리게 됐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권까지 넘보다 97년 해체된 한라그룹에서도 현대가의 부침은 드러났다.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정인영() 전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인 몽원()씨가 94년 후계자로 지명돼 한라그룹을 이끌어 왔으나 97년 한라중공업 부도와 함께 다른 계열사들도 청산과 화의 결정이 내려지면서 그룹이 사실상 붕괴됐다.

몽원씨는 작년 5월 우량 계열사를 통한 한라중공업 지원문제로 구속기소돼 3년형을 선고받은 후 보석으로 풀려나 현 항소 중이다.

왕자의 난으로 형제간 갈등=현대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2000년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왕자의 난에서 비롯된 형제간의 갈등도 현대가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왕자의 난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건설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현대상선 등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이끌던 정 회장은 창업주로부터 현대그룹의 후계자 지위를 사실상 확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측이 현대자동차그룹을 분리시키는 데 성공하자 후계자 지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 회장은 핵심 계열사가 빠져 소그룹으로 전락한 현대그룹의 좌장으로 격하됐던 것.

정 회장은 이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으로 대북사업에 전념했으나 이마저도 금강산 관광사업의 부진, 북한 핵문제로 인한 남북한 냉각기류, 대북 송금 특검수사 등으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정 회장은 작년 9월 대북 송금 파문이 터진 후 4개월여 동안 해외를 전전하며 국내에서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왔다.

올해 초 귀국 후 곧바로 대북 송금 특검팀에 여러 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자 그는 측근에게 정말 괴롭다며 심경을 내비쳤다.



김동원 daviskim@donga.com